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 불일치 심각
국민이 지지한 정당 득표율 따라
국회 의석 배분 이뤄져야

 

2019년 11월 29일 오후 2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관련 속보를 보면서 갑자기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연설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1989년 10월 7일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행사에서 “인생은 늦게 동참하는 자를 벌할 것이다”는 소련의 속담을 들어 개혁개방을 반대하던 호네커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한 달 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1년 뒤 1990년 10월 3일 동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역사는 그런 것이다. 작은 물길들이 모여 큰 강물을 이루는 동안에는 막을 수 있을 듯이 보여 둑도 높게 다시 쌓고, 여기저기 난 구멍을 막기 위해 흙도 퍼다 나르지만 종국엔 그 무수한 노력들은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대하(大河)가 된 물길은 어떠한 장애물도, 더 이상의 시간도 용납하지 않는다. 역사가 보여주듯 작은 물길의 존재와 그들의 시간을 간과한 과오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어떤 변화든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온다. 혁신이나 대전환이라 불릴 만큼의 큰 변화는 큰 기회 못지않게 커다란 위기를 동반한다. 변화의 과정 속에서, 작은 물길이 큰 강물이 되는 시간 동안 새로운 미래 권력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2016년 겨울 천만 시민이 촛불을 들었을 때부터 우리의 대전환의 시계는 작동하기 시작했다.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다른 정치를 꿈꾸며 말이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다른 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각계각층에서 분출되었다.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여성들의 권력 없음에 대한 분노가 그것이었고, 소셜 미디어를 종횡무진하며,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기성정치에 대해 꼰대정치라 조롱하며, 새로운 정치를 주장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그것이었다. 또한 기후위기나 홍콩 사태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참여를 주장하는 세계시민정치의 등장이 그것이었다.

결국, 여성들의 분노는 한 권력자를 무너뜨렸고, 청년들의 조롱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인 물갈이를 압박하고 있다. 또한 국제사회를 향한 기후위기와 홍콩민주주의를 위한 세계시민들의 외침은 이제 국내정책의 변화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그동안 국민이면서 비국민으로 대표되지 못했던 ‘몫이 없었던 자들’이 변화의 주체로, 새로운 미래 권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현재의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제도 하에서 이들의 정치 진입은 쉽지 않다. 소선거구제는 1명만 뽑기 때문에 사표가 많고,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에게 유리하다. 유권자들의 사표방지심리가 작용하여 주요정당에게 표가 쏠리기 때문이다. 2018년 6.13 지방선거 결과 서울시의회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이 50.9%의 정당득표율로 92.7%의 의석을 차지했지만, 자유한국당은 25.2% 득표율에도 의석은 5.5%, 바른미래당은 11.5% 득표율에 의석은 0.9%, 정의당은 9.7% 득표율에 0.9% 의석 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에 대한 지지표 중 80~90% 가량이 사표가 되었다. 이처럼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의 심각한 불일치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지지한 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 배분이 이뤄져야 하며, 그것이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는 국민 모두의 의사를 왜곡 없이 비례적으로 평등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아이들의 목숨을 볼모로 거래하고자 했던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단순히 지역구와 비례대표의석 배분이라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여성들에게 국가를 돌려주고 국민으로서 몫이 없었던 국민들에게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와 그들의 미래를 돌려주는 일이다. 그래서 정치개혁의 시계를 멈춰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를 향해 담대하게 전진하는 우리 국민들은 늦게 동참하는 자들을 반드시 벌할 것이다. 더 이상의 협상과 타협은 의미가 없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