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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2003 퀴어문화축제에서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박기호(34·미쟝센 단편영화제 사무국장)씨. 이제는 습관처럼 해오는 일인데도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당위성을 얘기하라면 늘 어렵다.

“한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비록 분장을 하고 가면을 썼지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 참가하면서 몇 년 동안 살아갈 마음이 생겼다구요. 동성애자들이 자신을 표출할 기회를 갖는 건요. 그건 ‘활력’이란 단어로는 부족하고… ‘광명’, 삶의 광명을 찾는 거죠.”

2000년에 시작해 올해 4번째를 맞는 퀴어문화축제. 그러면 수월할 법도 한데 어쩐지 갈수록 힘이 든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지금은 사람이 문제다. 변변한 축제 조직위 사무실을 꾸릴 수 없어 몇 년을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의 좁은 사무실에서 눈치보며 지내지만 그것보다 힘든 건 움직일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매년 행사를 할 때마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요. 집행위원 5명이 다들 돈을 버는 일과 퀴어문화축제 일을 병행하고 있으니까 버겁구요. 그럼 상근인력이라도 남아서 일을 꼼꼼하게 진행시켜야 되는데 그 인력도 연속적이지 못해요. 앞으로 일할 사람을 키워야 하는데 나이든(?) 사람들끼리 계속 허덕이며 일을 하는 것 같아요.”

그도 25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젊은 영화 감독의 시선으로 만나는 미쟝센 단편영화제 준비하랴 틈틈이 퀴어문화축제 영화제 프로그래밍 하랴 늘 바쁘다. 두 군데 영화제를 위해 영화 선택하고 필름 수배하고 장소 섭외하고 요즘 그는 24시간 풀 가동이다. 그런데도 커뮤니티 내부에선 그의 분주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끔 힘 빼는 소리를 한다.

“그냥 조용히 살든가, 아님 제대로 하든가?” “인권을 논할 때지 축제는 무슨 축제?”

퀴어문화축제는 1년에 단 한번 준비하는 사람이나 참여하는 사람, 모든 동성애자들이 즐길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 내부에서마저 주체적 참여에 대한 고민은 빠져있고 방관자적 시선으로 대할 때면 보람을 찾기가 힘들다.

“축제가 남성 중심적이라는 생각은 안 드나요? 레즈비언의 활동은 보기 드문데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제가 한편을 제외한 모두가 레즈비언의 흐름을 보여주는 영화로 골랐어요. 노력을 하지만 아시다시피 집행위원이 다 게이에요. 레즈비언의 문화를 알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데 잘 동화가 되지 않아요. 한국적인 상황에서 게이들의 코드도 짚어내기 힘든데 하물며 레즈비언과 결합할 수 있는 부분을 찾기 힘들지 않겠어요?”

생물학적 남성만을 따져 출입을 금지한 레즈비언 바에 대해서도 불만을 내비친다. 정작 젠더는 여성이기에 문화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는데, 생물학적 성만을 엄격하게 따지는 건 비합리적이라는 생각.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레즈비언은 이중삼중의 억압을 둘러막기 위해 그만큼의 성을 쌓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운전면허증도 없고 폭력이며 사회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퀴어 퍼레이드만 아니었다면 평생 가도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과 마주칠 일이 없었을 거라는 그. 하지만 탁 트인 대로를 활보할 때 퀴어들이 느끼는 자유와 쾌감이 어떤 건지 알기에, 오늘도 차로 하나 더 확보하려고 경찰을 앞에 두고 전전긍긍이다.

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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