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의 목소리] ⑪ 변두리에서
[생존자의 목소리] ⑪ 변두리에서
  • 김삽
  • 승인 2019.11.29 08:00
  • 수정 2019-11-27 2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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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인근 숲 위로 뜬 보름달. ⓒ뉴시스·여성신문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인근 숲 위로 뜬 보름달. ⓒ뉴시스·여성신문

 

달이 떴고 나는 하얀 땡땡이 원피스를 입고 있었죠 누군가의 곁에서라도 자고 싶었는데요 그게 너였죠 거미가 기어 올라오네요 우린 캠핑을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 꿈은 거미여인 혹은 표범여인 중요한 건 여인이 아니라 거미나 표범이죠 사람 아닌 것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죠 저주에 걸리고 싶었죠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둘 그래서 혼이 났죠 거미도 표범도 아니면서 말이에요 원피스가 뒤집힌 일에 관하여 종알종알 떠들어댄 밤, 달이 떴고 나를 빼고 모두를 믿을 수 있었어요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밀담 그래서 혼이 났죠 나는 더 이상 둘을 꿈꾸지도 밀담을 속삭이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혼이 났죠 신을 의심하기 시작하죠 왜 나는 혼이 나나요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그 안에 나는 작은 동그라미로 지워지는 중이에요

스무살에도 달은 뜨죠 달이 뜨면 눈을 뜨고 사랑하는 이의 피를 마시는 뱀파이어가 되고 싶었죠 사랑을 저주했어요 저주에 걸리지 않으니 내가 하는 수밖에요 나는 살아 있는 저주였죠 걸어 다니는 저주랄까 나는 믿는 거 없이 가난했어요 누가 가난을 나무라나요 오히려 가난은 자랑이었죠 모두들 내 가난을 좋아했어요 스무살 두 번의 달이 떴고 그들은 내 가난을 칭찬했어요 나는 모든 게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어요 치켜뜬 눈으로 달을 노려보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라는 걸 달도 알죠 나를 비웃는 달, 나는 더 크게 웃었어요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 뭔지 보여줄까? 오 년 만에 발병한 정신병을 자랑처럼 달고 다녀요 완치는 헛소문이죠 불쌍한 부모는 그걸 꿈꾸고 내 목소리는 더 커져요 입 안에서 보글보글 동그란 거품들만 쏟아져 나오죠

십 년이 지났어요 세상에, 아직도 원 안으로 편입되길 바라는 사람이 있군요 나는 변두리에서라도 살아 있고 싶었어요 미투를 농담처럼 말하지 마세요 그럴 거면 제발 닥쳐요 달을 너무 믿진 마세요 조금 더 오래 제 말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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