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겨울, 눈만 오면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20년 전 부모님이 스웨덴에 오셨을 때의 일이다. 자동차로 두 분을 모시고 가다가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자동차가 전복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자동차가 뒤집힌 채 눈이 덮인 밭을 따라 미끄러져 정지하면서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뒤에 앉아 계셨던 두 분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했기에 뒤집힌 차에 거꾸로 한동안 매달려 있어야 했다. 재빠르게 자동차를 세우고 우리에게 달려와 구조를 해주었던 운전자들 덕분에 곧 바로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눈길을 달려 30분만에 응급실에 도착했다.

나는 통역사 역할을 하느라 진찰을 받으면서도 정신없이 두 분을 오가며 의사와의 대화를 통역해야 했다. 다행히 나와 어머니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결과가 나왔지만 아버지는 사고 때 받은 정신적 충격과 뒤집힐 때 받은 허리충격으로 입원을 해야 한다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어머니는 아들이 병원에서 동분서주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셨던지, 애꿎은 아버님만 붙들고 빨리 회복해야 아들이 덜 고생한다고 하며 연일 눈시울을 훔치셨다.

아버님의 회복은 빨랐다. 이제 물리치료만 하면 되기 때문에 10일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며칠 후 병원에서 우편물이 도착했다. 직감적으로 치료비 청구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일 동안 엑스레이, MRI촬영, 제약비용 등 진단비용과 치료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 걱정이 나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명세서를 열어 보니 괜한 기우였다. 명세서는 다음과 같았다. “치료비와 입원비 포함 총 9만원, 퇴원할 때 개인적으로 지불한 택시비가 10만원, 만원을 돌려줌.”

집에는 돌아왔지만 아직 거동이 불편한 아버님의 물리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마침 전화가 왔다. 사회복지과 직원이었다.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연락한 것이라 했다. 본인이 원한다면 시 요양시설에 모시고 물리치료를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역이 필요해 집에서 치료를 원한다고 하니 아버님이 집에서 사용할 의료기구를 가져다 준다고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만에 집으로 다양한 보행기구와 환자용 변기 등을 차에 한가득 싣고 달려 왔다. 그들이 건넨 처음 한마디가 아직도 내 가슴에 남는다.

“이제부터 아버님의 돌봄은 우리가 책임집니다.”

물론 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택 물리치료에 드는 비용은 하루에 5000원이 채 안되었다. 가져다 준 의료기구 중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치료 후 돌려 주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가정보험은 자동차사고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비용을 모두 보전해 주었고, 위로비까지 얹어 주었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 정신적 충격은 있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손실은 없었던 셈이었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다.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했던 스웨덴복지도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다. 암이 걸렸어도 기다리는 줄이 길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뉴스가 스웨덴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감기에 결려 병원을 가면 집에서 그냥 쉬는 것이 최고의 약이라고 핀잔만 받고 돌아와야 한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려면 먼저 전화를 하고 최소한 며칠을 기다려야 차례가 된다. 개인이 부담하는 병원방문비도 많이 올랐고 2~3차 진료를 위해서 몇달을 기다리는 것은 거의 일상화 되었다. 오죽 했으면 ‘333’ 공약이 나왔을까? 3일만에 의사를 만나고, 30일만에 2차 진료, 3개월 안에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우파의 선거공약이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국민에게 지출되는 사회복지비용은 빠르게 늘어간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노동인구는 빠르게 줄고 있어 복지재정이 고갈되어 가는 것이 문제다. 질 높은 사회복지의 요구는 가파르게 늘지만, 재정은 제자리이거나 점차 감소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얼마전 어머니께서 94세의 여생을 마치셨다. 임종하시기 전 3주간 병원과 요양병원시설에서의 입원비용은 많지 않았다. 한국의 높은 병원비용을 걱정했던 나의 우려는 기우였다. 한국도 이제 의료복지가 좋아져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가족들이 귀띔해 주었다. 스웨덴 병원에서 자식을 걱정하며 눈물을 훔치셨던 어머니께서 한국 병원에서 좋은 보살핌을 받고 세상을 마감하셨다. 한국의 잘 구축된 사회복지와 의료체계에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복지에는 야누스의 두 얼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스웨덴은 모든 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금을 내면서도 한정된 복지재정으로 다양한 복지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20년 후 한국의 복지가 스웨덴보다 더 우수한 제도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복지수요를 충족할 지속적 재정 확보와 경제성장의 엔진이 꺼져서는 안되는 이유다. 나의 값진 체험은 한국의 미래에 닥칠 위기에 지금 눈감고 있으면 안된다는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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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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