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와 하라’ 여성들은 절망을 느꼈다
‘설리와 하라’ 여성들은 절망을 느꼈다
  • 김서현 기자
  • 승인 2019.11.27 09:43
  • 수정 2019-11-28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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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간 이어진 여성 연예인의 죽음
루머와 악성 댓글, 사법부의 2차 가해
2017년 구하라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설리씨와 찍은 사진. 절친했던 설리씨의 죽음 직후 구하라는 SNS 라이브에서 “그곳에서 정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잘 지내. 언니가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 열심히 할게”라고 했지만 그 역시 40여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구하라 인스타그램 캡처

설리와 하라. 두 사람은 예쁜 인형이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악성 댓글의 제물이 되고, 잠시 인연이었던 남성의 폭력과 성폭력으로 뭇사람의 가십거리가 되어 사법부에 피해를 호소했지만 도리어 2차 피해를 입었다. 광경을 목격한 여성들은 여성의 곁에 선 이가 가해자 외에 누가 있는지 묻고 있다.  

11월 24일 가수 구하라(28)씨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구씨는 지난해 9월 전 연인 청담동 헤어숍 대표 헤어디자이너 최종범(28)씨로부터 폭행 가해자로 경찰에 신고당했다. 그러나 사건 내막에는 최씨에 의한 성관계 동영상 유출 협박과 해당 영상의 언론사 제보 시도, 주거침입 및 폭행, 불법 촬영 등이 얽혀 있었다. 

전 연인과의 문제를 겪으며 사생활 동영상의 존재까지 알려진 구씨는 세간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언론은 여성 연예인으로서 절박한 위기를 느꼈을 구씨를 보호하는 대신 특종이라는 이름으로 영상 유출을 막기 위해 최씨의 앞에 무릎을 꿇은 모습을 내보냈다. 또 교차검증 없이 일방적인 최씨의 인터뷰가 나왔다. 언론을 통해 최씨가 언론에 사생활 동영상을 제보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동영상을 찾아 나섰다. 보도가 나온 10월4일 ‘구하라 동영상’은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구글의 일간 인기검색어 1위에 올랐다. 

마지막 기댈 곳이었던 사법부도 가혹했다. 그해 10월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부장판사는 “피의자가 격분해 제보했다고 말한 점(…) 등에 비춰보아 피의자를 구속할 사유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최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는 심리 중 변호인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동영상 확인을 요구해 홀로 확인하기까지 했다. 결국 재판부는 지난 8월, 일반인들이 가득 찬 법정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살핀다며 두 사람의 만남의 계기, 동거 계기, 성관계 장소 및 횟수 등을 밝히고 최씨가 초범에 반성하는 점 등을 들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여성 구하라는 사법부에 철저히 외면당했다. 

10월 가수이자 배우 설리(25·최진리)의 죽음 이후 이어진 구하라의 비보에 여성들은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앞서 설리는 올해 전방위 연예활동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SNS를 통한 사생활만이 소비됐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 사이트 빅카인즈의 키워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설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인 10월13일까지 지난 1년간 그를 다룬 관련 기사 1666건에서 6월 낸 싱글앨범 ‘고블린’은 단 61회 언급됐다. 반면에 ‘인스타그램’은 841회 언급됐다. 구하라 또한 비슷한 상황이다. 구씨는 6월 일본 유명 소속사인 프로덕션 오기와 전속 계약을 맺고 10월 싱글 앨범을 발매하고 일본 전국투어를 진행했다. 그러나 빅카인즈 키워드 분석 결과언론이 주목한 것은 그의 연예 활동이 아닌 성관계 동영상과 남자친구, SNS였다. 언급 빈도수가 잦은 키워드 30위권 내에 그의 연예 활동과 긍정적인 키워드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사건이 전해진 11월 25일 부산페미네트워크는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고 구하라씨 추모 및 사법부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법원 한 켠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참석한 여성들은 재판 과정에서 2차 가해를 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사법부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가해자를 규탄했다. 추모 공간에 흰 국화를 놓으며 울음을 참지 못 하는 이들이 많았다. ⓒ부산페미네트워크
사건이 전해진 11월 25일 부산페미네트워크는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고 구하라씨 추모 및 사법부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법원 한 켠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참석한 여성들은 재판 과정에서 2차 가해를 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사법부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가해자를 규탄했다. 추모 공간에 흰 국화를 놓으며 울음을 참지 못 하는 이들이 많았다. ⓒ부산페미네트워크

 

SNS에는 여성들의 절망감과 허탈감을 토로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구하라, 설리와 나는 접점이 없다. 그쪽은 물론 나를 모르고 나도 이름과 얼굴 말고는 거의 아는 게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 것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여자라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점 때문이다. 어째서 죽었는지 알고, 죽은 게 나일 수 있다는 것도 안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사건이 전해진 바로 다음날인 25일 부산페미네트워크는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고 구하라씨 추모 및 사법부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법원 앞에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법부의 2차가해 중단하라”며 솜방망이 처벌과 심리 과정에서 2차 가해를 한 재판부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들이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 이후 느끼는 절망감을 ‘같은 여성으로서 느낀 동질감’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사건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정서에는 그들이 겪었던 일들이 ‘내 일이었을 수 있다’는 공포가 있다. 성적 공격과 성폭력에 대한 공포는 우리 사회 여성들이 공유하는 정서인데 설리와 구하라가 그런 공격을 받는 상황을 여성들은 모두 목격했었다”며 “여성에 대한 성적 공격과 성폭력을 용인하는 문화를 끊임없이 생산해온 가해자에 관용적인 사법체계와 언론, 남성 문화에 대한 절망과 분노는 행동으로 나타날 여지가 크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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