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캣맘의 보통날] ④
몰래 두고 간 아깽이 두 마리
어렵사리 살아남은 흰둥이
‘릴리’ 이름 얻고 새 둥지로

영화 ‘고양이 케디’ 스틸컷 ⓒ영화사 찬란 제공
영화 ‘고양이 케디’ 스틸컷 ⓒ영화사 찬란 제공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현관문에 뭔가가 달려 있었다. 문자 한 통 없었던 것으로 봐서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있었던 듯했다. 쇼핑백을 테이프로 감아놔서 안에 담긴 것이 뭔지 재깍 가늠되지 않았다. 가볍고 폭식폭신한 감촉이었다. 테이프가 덜 감긴 쪽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던 나는 “아악!” 비명을 질렀다. “뭐 이딴 인간이 다 있어!”

쇼핑백 안에는 아기고양이가 두 마리 들어 있었다. 한 녀석은 우리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고등어, 다시 말해 회색 줄무늬이고 다른 녀석은 흰 바탕에 작은 얼룩이 있는 흰둥이 녀석이었다. 녀석들은 이미 너무도 지쳤는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잠잠했다. 우리 집에는 아직 예방접종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있어 함부로 아기들을 들일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들어가 급한 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박스에 작은 담요를 깔고 녀석들을 꺼내놓자 회색 줄무늬는 이미 움직임이 없다. 흰둥이는 바짝 겁에 절어 있지만, 먹을 것을 주자마자 얼른 먹어치운다. 태어난 지 한 달 보름은 된 듯한데, 하나같이 오자미처럼 작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같은 배에서 태어나 같은 젖을 물다가 버려진 것이 분명했다. 선행을 한다는 착각으로 남의 집에 몰래 버려두고 갔을 것이다. 남에게 얼마나 큰 짐을 지운 줄도 모르고 분명 두 생명을 구했노라 흐뭇해했을 것이다.

거의 숨이 넘어간 고등어가 생각보다 오래 버티는 것을 보고 있자니 심란했다. 한옥에 살 때 죽기 직전에 우리 집에 들어와 숨을 거두는 고양이를 많이 봤던 나는, 그들의 마지막을 어떻게 지켜봐야 하는지가 늘 의문이었다. 누군가가 살포한 독약을 먹고 우리 집 지붕으로 왔던 한 고양이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긴 고통을 이어갔다. 그 녀석의 죽음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몇몇 사람의 힘든 임종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직접 보지 않고 녀석의 거친 숨소리와 비명, 신음소리를 들었다는 점이다. 잠깐 열려 있던 창고에 들어앉았던 동네 대장고양이의 죽음은 또 얼마나 강렬했던가. 완전 블랙이었던 그 대장 고양이는 다른 수컷들에게 너무도 거칠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수컷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곤 했다. 그처럼 당당하게 지존의 자리를 유지했던 녀석이 어느 날 만신창이가 되어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녀석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이 내뿜는 심한 악취를 풍기며 잠깐 열려 있던 창고로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래 지켜왔던 지존의 자리를 빼앗기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악취 속에 섞인 피 냄새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거기서 편히 죽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죽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던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다. 힘을 내서 잘 죽으라는 의미로 나는 물과 습식 사료를 넣어주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녀석은 버티고 있었다. 물 한 모금 먹지 않은 채 그토록 버틸 수 있는 것도 대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듯했다. 마지막으로 문을 열었을 때, 녀석은 평소보다 눈이 초롱초롱했고, 심지어 생기마저 느껴졌다. 결국 119가 와서 녀석을 포획했고, 친절하게도 병원으로 옮겨 주었다. 하지만 그날 밤, 녀석은 병원에서 죽었다. 그때서야 또 어른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정신이 맑아지고, 힘도 부쩍 나서, 잘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던 그 말이. 그건 동물인 고양이에게도 해당되었다.

생각보다 잘 버티는 고등어 때문에 뒤숭숭해하다가 흰둥이까지 데리고 가 같이 입원시켰다. 하지만 결과는 대장 고양이 때와 똑같았다. 우리 집에서 편히 숨을 거두게 뒀으면 더 좋았을 아깽이 역시 그날 밤 병원에서 죽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날 고등어를 하얀 종이로 싸서, 두 녀석을 우리 집 현관문에다 매달아 놓았을 거라고 짐작되는 사람이 사는 집의 담장과 붙은 공유지의 단풍나무 아래 묻었다. 그 위에는 주변에 널린 풀꽃으로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올려놓았다.

흰둥이는 우리 집 고양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말거나 폴짝폴짝 뛰며 잘 놀았다. 사람도 잘 따라서 잠깐 멈춘 내 발등을 베고 있거나, 발치에서 통통 튀었다. 하지만 우리 집 고양이들은 흰둥이가 다가가면 겨울바람에 쓸리는 낙엽처럼 스산한 얼굴로 몰려 다녔다. 운이 좋아 흰둥이는 물고 있던 흙수저를 내던지고 금수저를 물었고, 릴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향긋한 녀석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릴리는 어느 집에 셋째로 입양되었다. 먼저 있던 둘이 눈만 마주치면 서로 죽일 것처럼 싸우는데, 릴리가 중간에서 그 긴장을 없애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 일이 잘 안되면 파양될 수도 있다는 조건이 붙었다. 어찌 보면 최악의 입양 조건이었다. 영리한 릴리는 그 역할을 거뜬히 해냈고, 단숨에 반려인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눌러앉았다. 내가 가장 최근에 입양 보낸 고양이, 릴리가 중성화수술을 받는다는 연락을 오늘 받았다. 나는 흰둥이 릴리의 수술 시간에 밝혀둘 하얀 초 한 자루를 찾아 세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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