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우울한 청소년들이 만나는 세계
[세상읽기] 우울한 청소년들이 만나는 세계
  •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11.24 09:09
  • 수정 2019-11-24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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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청소년이 있다. 이들은 모두 병원에서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았다. 내가 이들을 만나게 된 것은 이들이 우울을 경험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다른 활동을 목적으로 만났고, 만나고 보니 우울하다는 것을 알았다.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보면, 통계치의 심각함이 낭만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살아 있을 이유를 찾기 어려워하는 청소년들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는 일정 기준 이하의 사람은 살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신호를 전방위적으로 보낸다. 그것은 학력, 직업, 소득, 고용상태, 거주 등의 분야에서 다각도로 나타난다. 청소년들은 늘 특정 조건의 사람이 되었을 때만 인정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메세지를 받는다. 그 조건은 3등급 이상일 때도 있고, 직업을 가진 사람일 때도 있고, 이성애자일 때도 있다.

여기에서 말해보려는 것은 ‘기준에 맞춘 성장’ 에 대한 것이다. 넷은 모두 어렸을 때 성장판 검사와 시술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중 한명은 근 2년간 몸의 여섯군데 성장판에 매일 밤 주사를 맞으며 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내 아이 키 정상인가'라는 성장판 검사에 대한 관심은 한때 제법 일반적이었다. 상당한 비용을 감안하고도 이들의 성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자 했던 극진한 마음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떻게 보면 키는 성적보다도 가혹한 기준이다. 일단 수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객관적,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 타인과 비교가 아주 쉽다. 글쓰기는 잘하는데 공식은 못 외우는 등의 다양한 해석도 불가능하다. 성적은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는 노력의 허상이라도 있지만, 키는 내가 뭘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지만, 무엇이든 했어야 한다. 죄책감은 여전하다. 내가 김치를 안 먹어서, 내가 우유를 못 먹어서 키가 안 큰 것 같다고 청소년들은 농담하듯 말했다.

그리고 결론은 항상 미달이다. 지금의 나는 부적절한 상태다. 커야 하는 높이가 이미 결정되어 있어 그것을 기준으로 지금의 나를 판단하게 된다. 다른 방향으로 열려있는 가능성은 없다. 현재의 의미는 목표점을 기준으로 설명된다. 지금의 나는 어떤 기준 이하다. 어느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예측을 의학이라는 과학의 이름으로 진단 받았는 것은 아주 좁은 협상의 여지를 남긴다. 삶은 길이로 판단된다.

이 이야기가 성장판 검사를 해서 이들이 우울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우울의 맥락과 원인은 한가지로 설명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성장판 검사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성장판 검사와 키는 마치 우화처럼 지금의 청소년이 경험하는 한국 사회의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우리는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사회에서 대대로 살고 있다.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 내가 보는 가능성은 우울한 청소년 넷으로부터 나온다. 이들은 각자 고립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다, 청소년 활동 모임에 나오면서 비로소 타인과 연대하며 자기를 구하기 시작했다. 항상 밝을 수 없음을 이해하고, 서로의 우울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들이 소속된 청소년 모임은 서로를 돌보고, 놀고, 긴급한 일을 반드시 밖으로 발신하며 도움을 구한다. 도움을 받을 기관들의 목록을 만들고, 연락할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넓힌다. 인간은 고립이 아닌 연대로만 계속 걸어나갈 수 있음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이들로부터 배우고 있다. 이제 청소년들의 발신에 답을 해야 하는 때이다.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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