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니카 메히아 파체코
“아이들은 공동체의 일원”
미래세대 위해 나선 여성들
대통령 만나 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예의 갖춰 차려 입어

 

모니카 메히아 파체코(Monica Mejia Pacheco·39)는 에콰도르에서 왔다. 경제 사회복지부(Economic and Social Inclusion)에서 빈민층을 위한 정책을 만들던 중간관리직 공무원인 그는 지금 이화여대 국제 대학원에 유학 중이다. 배우러 왔다지만 우리를 찾아온 그들은 소중한 지식자원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까지 무산시킨 칠레의 시위 의 이유를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너무 몰라서 구체적인 질문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모니카 메지아 파체코씨.
모니카 메지아 파체코씨.

 

아메리카는 미국이 아니다

“아메리카는 USA가 아니다.” 모니카를 만났을 때 그가 처음 한 말이다. 메스티사(mestiza·혼혈)인 모니카가 “에콰도르, 칠레 그리고 쿠바도 아메리카다”라고 할 때 뭔가 강한 정치적 의지가 느껴졌다. 그 방향은 무엇이었을까?

최근 칠레 뿐 아니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그리고 하이티 등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세계 최강 자본주의 국가 미국 주변에 위치했으면서 21세기 사회주의를 지켜온 정치지리학적으로 특수성을 지닌 나라들이다. 부정선거, 부패, 그리고 물가상승을 비판하며 국민들이 나선 것이다. 모니카는 에콰도르에서 지난 10월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되었던 12일간의 시위 이야기를 펼쳤다.

“2017년 정권을 잡은 에콰도르 대통령 레닌 모레노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며 오랫동안 사회주의자로 활동한 사람이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을 때, 국민들의 열망은 분명했다. 약자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대통령을 원했다. 그러나정권을 잡자 그는 좌파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IMF의 문을 두드리며 우파 정책으로 돌아섰다.”

IMF 차관이 왜 우파 정책일까?

에콰도르 외교부 장관은 이제 국제통화기금(IMF) 차관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경제를 회복할 수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기쁘게 에콰도르를 맞으며 42억 달러(약 5조원)를 빌려준 IMF는 빠르게 돈을 갚기 위해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국가 공무원 수를 줄이고, 복지와 공공서비스를 줄여서 국가 지출을 줄여라.” 국가가 서비스를 줄이면 이것은 고스란히 개인들이 책임지거나 민영화로 전환된다. 신자유주의의 길을 닦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IMF는 관세를 낮춰 자유무역 체제로 나갈 것을 요구했다. 결정적으로 에콰도르 정부는 10월 2일 지난 40년 동안 지원했던 ‘유류 보조금 정책’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니카는 에콰도르 정부의 정책 결정에 대해 “(고작) 42억 달러를 빌리고 빚은 갚아야 한다며 거의 모든 경제 체제를 바꾸려는 모레노 대통령을 국민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며 “여기에 가장 먼저 반발한 사람들은 운송업자였다”고 설명했다. 즉각적으로 버스, 트럭, 택시 운전기사들이 차량으로 도로를 막으며 시위에 나섰고, 전국적으로 파업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국가가 이들과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했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기를 업은 에콰도르 선주민 여성이 시위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BBC
아기를 업은 에콰도르 선주민 여성이 시위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BBC

 

수도 키토로 향하는 여성들

에콰도르 전국에 흩어져 있던 선주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영리 언론매체 트르스아읏(Truthout)은 유류 보조금을 폐지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환경을 핑계(Green washing)로 한 약자 차별이라는 것을 선주민이 알아차렸다고 보도했다. 즉, 선주민이 살고 있는 숲과 자연을 더 파괴하겠다는 발전전략을 펼치겠다는 전조였던 것이다. 모니카는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선주민들이 움직이니 노동조합과 대학생단체가 합류했다. 2000년도 초반에 선주민은 시위를 통해 6명의 불의한 대통령을 퇴진시켰고 그들이 움직일 때 또 다른 변화가 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예감했다.”

무엇보다도 선주민 여성들은 아이를 안고 수도로 향했다. 모니카는 “여성들이 6시간을 걷고, 혹은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며 행렬에 참여했다”고 했다.

“여자들이 아이를 데리고 시위에 올 때 사람들은 여자들을 비난했다. 위험한 곳에 아이를 데려간다고. 혹자는 아이를 방패삼는다고. 그러나 선주민 여자들은 단호했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하고, 아이들은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를 고려하는 선주민의 세계관은 시위에서도 드러난다.

선주민 여성들은 시위하기 편한 가벼운 차림을 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모자를 쓰고 정장을 입고 시위에 참여했다. 수도에서 대통령을 만나 대화하기 위해 최대한의 예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들을 제지하는 체루탄이 뿌려졌고 탱크가 등장했다.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키토의 한 대학에서 평화센터를 임시로 만들어 머물면서 우직하게 대통령의 대답을 기다렸다.”

모니카에 따르면 겁이 난 대통령은 수도 키토의 사령부를 과야낄(Guayaquil)로 옮겼다. 그곳은 ‘선주민은 더럽고, 우리는 선주민을 싫어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선주민들의 출입을 막았다. 그러나 전국으로 확산된 시위는 선주민들을 중심으로 꺼지지 않았다. 그제야 대통령은 대화를 하겠다고 나섰고, 선주민 대표는 골방에서 아니라 모든 국민이 보는 앞에서 열리는 협상을 제안했다. 협상을 하겠다며 뒤로는 무력진압을 했던 정부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 대표, 유엔 대표 그리고 선주민 대표가 참여해 5시간의 긴 협상이 이뤄졌고 지켜보는 사람들은 선주민들의 지혜에 감탄했다. 협상 말미에 텔레비전 화면에 883 선언문 전면 폐지라고 떴고 국민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시위가 시작된 지 12일 만에 10월 14일 IMF 패키지가 철회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정부의 현명한 결정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이것은 국민들과 선주민들의 승리였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또다시 경험했다. 그들은 싸움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불꽃은 지금 주변국가 번져나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니 미국(USA)을 아메리카라고 부르지 말라는 모니카의 말이 떠올랐다. 아메리카에는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 때문에 퇴보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선 에콰도르, 칠레, 하이티, 볼리비아 그리고 더 멋진 나라들이 지금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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