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캣맘의 보통 날] 캣대디의 등장
[사직동 캣맘의 보통 날] 캣대디의 등장
  • 조은 시인
  • 승인 2019.11.27 19:31
  • 수정 2019-11-27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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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동 캣맘의 보통 날] ③ 캣대디의 등장
무심코 ‘동네 고양이’를 ‘아이들’로
표현하자 “누구를 말하는 거냐?”
묻던 담당형사의 매서운 눈빛
귀여운 고양이 ⓒ여성신문 ⓒ여성신문
ⓒ여성신문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저녁 시간을 보냈다. 한창 대화가 무르익을 때 뜻밖의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부동산 근처 고양이들이 요즘 잘 안 보이네요. 고양이들 별일 없죠?”

캣대디 의사였다. 우리 집에서 오십 걸음쯤 떨어져 있는 아파트에 이사 온 지 2년째이고, 가끔 스쳐가는 그의 이름을 안 것은 지난주이다. 좀 불공평하지만 그가 1964년생인 것도 알고 있는 나에 관해 그가 아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오직 캣맘일 뿐이다. 두 마리의 유기견을 입양해 날마다 산책시키는 그의 아내와는 더 일찍 인사를 나누었지만, 개들 이름 외에는 싹 잊어버렸다. 동물과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한 존재감이 있을까. 하지만 세상은 동물을 어엿한 생명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모욕을 안기는데 주저함이 없다.

나는 고양이에게 “그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눈까지 붉어질 정도로 모욕을 당한 적이 있다. 내가 여러 해 동안 급식하는 골목에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가 들어왔다. ‘동물에 대한 높은 감수성’을 기업이념으로 내세우며 아프리카 사파리를 주력상품으로 팔고 있던 젊은 커플은 끔찍한 동물혐오자였다. 그들은 고양이들에게 독극물을 살포하고, 동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나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나는 끝을 보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한 뒤 종로경찰서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간의 기막힌 사연을 설명하던 내가 무심코 ‘동네 고양이’를 ‘그 아이들’이라고 표현했던가 보다. 각진 턱에 눈매가 매섭던 담당형사가 ‘너야말로 얼마나 밥맛없는 인간인 줄 알고 있냐?’는 노골적인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형사들로 가득한 조사실이 탕탕탕 울리는 총성 같은 목소리로 “그 아이들이란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라고 했을 때 나는 이리 굴로 들어간 토끼가 된 심정이었다. 공권력이라는 제복 안에 얼마나 많은 동물혐오자가 숨어 있는지 절감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저녁 시간을 보내며 ‘이런 한적한 저녁시간이 얼마만인가’ 하던 나는, 캣대디가 보낸 문자 때문에 캣맘으로 급전환했다.

“요즘 거의 매일 인왕산 들개들이 떼를 지어 내려와 고양이를 사냥하고 있어요. 개가 무서워서 고양이들이 조심하는 거예요.” 어둠 속에서 문자를 읽고 있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다시 문자가 날아왔다. “아, 그런가요? 제가 밥 주는 아이들도 피해를 입었나요?” “구내염에 걸린 꼬질꼬질한 애가 안 보이고… 중성화 수술한 냥들도 안 보여요. 스페이스본의 노랑이도 물려 죽은 것 같아요.”

개들에게 물어뜯긴 채 발견된 가여운 고양이에 대해선 차마 언급하지 못한다. 깊은 밤이면 사람들이 유기한 큰 들개들이 떼를 지어 정부종합청사와 광화문광장까지 내려와 어슬렁거린다는 말 역시.

“아, 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타깝네요. 안녕히 계세요.”

이 의사는 대할 때마다 신선하다. 얼굴에 나타나는 장난기와 여유로움 때문에 그는 풋풋한 청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도 이웃주민으로부터 “당신이 먹이는 고양이들이 망쳐놓은 우리 집 지붕을 싹 수리했다”며 변상하라는 억지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가 사는 아파트와 바짝 붙어 있는 그 한옥은 재개발 차익을 기대하며 지난 이십여 년 동안 헛간처럼 방치되어 있었건만.

캣맘이 된 뒤로 나는 자신이 용량이 아주 큰 사람은 아닐까 반문하곤 한다. 차에 치인 고양이, 병든 고양이, 독살된 고양이들을 병원으로 나르고 묻어주기 위해 땅을 파는 동안 나는 엄청나게 강해졌다. 특히 예기치 않게 몇 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했던 고양이를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입양시키는 것에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 기적도 만났다. 그 녀석들을 버릴 수 없다고 마음을 정하고 있으면, 늦게라도 입양처가 나왔고, 그것은 가히 기적이라 할만 했다.

나비처럼 팔랑대는 아기고양이를 입양시키는 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화장실과 사료, 모래를 미리 준비해두세요”라고 하면, 대부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곧이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라는 말이 정석처럼 들렸다. 그럼에도 내가 엄청나게 고양이를 입양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입양자 성향을 살펴본 뒤 안되겠다 싶으면 아예 한살림 장만해 보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생명의 운명은 그처럼 물질(모래, 사료, 화장실, 간식, 드물게는 접종비와 중성화수술 비용까지)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일단 입양되면, 입양자는 자주 사진을 보내주며 입양하기를 아주 잘했다는 인사를 하고, 둘째와 셋째도 들이곤 한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작은 생명들이 그처럼 아슬아슬하게 인간의 손길 안으로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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