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윤희에게’] 느릿하게 휘감는 두 여성의 아팠던 기억
[영화 ‘윤희에게’] 느릿하게 휘감는 두 여성의 아팠던 기억
  • 김진수 기자
  • 승인 2019.11.07 08:00
  • 수정 2019-11-06 2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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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윤희에게’
남편과 이혼한 윤희(김희애)는 딸과 일본 오타루에 여행 떠나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리틀빅피처스
남편과 이혼한 윤희(김희애)는 딸과 일본 오타루에 여행 떠나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리틀빅피처스

차갑고 새하얀 눈밭에서도 새싹은 돋는 법이다. 다만 깊고 높이 쌓인 눈 속에서의 차가움이 오래간다. 14일 개봉하는 ‘윤희에게’(감독 임대형)의 두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넌지시 드는 기분이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일본 오타루(小樽)에서 조용히 내리는 눈만큼이나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윤희(김희애)와 쥰(나카무라 유코)은 차분하고 짙다. 마음 속 깊이 숨겨두었던 한 아픔을 꺼내서 이야기 하듯 “잘 지내니?”라고 묻는 편지 글 한 마디에서 아련했지만 감당하기 어려웠던 옛 감정의 흔적이 되살아난다.

윤희는 남편과 이혼한 뒤 딸 새봄(김소혜)을 데리고 평범한 일상을 산다. 어느 날 딸 새봄이 오타루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오타루에 온 윤희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첫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잠긴다. 한편 쥰은 오타루에서 고모와 함께 둘이 살고 있다. 윤희는 쥰의 집을 찾아가 그의 모습을 보더니 얼어붙고 만다.

세상에는 정확한 설명이 없어도 누군가의 감정을 읽어내는 순간들이 수두룩하다. 임대형 감독은 두 주인공을 웃음기 없이 메마르거나, 세상이 준 상처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듯한 표정으로 잡아낸다. 인물들은 차분하게 대사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천천히 잎이 빗물에 젖어가듯이 윤희와 쥰에게 녹아든다. 자연스럽게 그녀들의 과거를 조금씩 떠올리게 된다.

김희애와 나카무라 유코의 묵직한 연기가 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느릿하지만 깊고 진한 목소리와 어떤 감정 속에서 짓눌려 있는 모습에서, 국적과 성별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두 여성의 사랑이 얼마만큼의 벽을 마주해야 했는지 짚어낸다. 세상의 숱한 시선을 견디기에 두 사람만의 마음과 의지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현실로 펼쳐진다.

두 배우가 영화 속에서 각자가 쓴 편지를 내레이션처럼 읽어가는 것을 듣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오랜만에 안부를 전하며 중년의 여성이 된 현재 시점에서 상대방을 기억하는 감정이 편지에 오롯이 담겨 있다. 연출을 맡은 임대형 감독은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이슈가 시대정신이 됐다. 동아시아의 여성들이 연대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105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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