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냐 정시냐’ 논의 넘어
입시제도가 엄마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해야

많은 사람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입시와 관련한 편법에 분노했다. 그러한 분노는 현재의 학생부종합전형(수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고, 수학능력시험(정시)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대통령은 정시를 확대하겠다고 했고 교육부에서는 대입전형과 관련한 개편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대입전형과 관련해 ‘수시냐 정시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대학 입시와 관련한 논의들 속에서 여성은 엄마로 등장한다. 특히 조 전 장관의 입시편법에 대해 30~50대 엄마들이 가장 많이 분노하고 있다는 식의 얘기다. 실제 엄마들이 가장 분노할 수밖에 없다. 모두들 알고 있는 한국사회의 기본 상식은 자녀 교육의 주체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학업 성과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에서 나온다는 우스개 소리가 상식처럼 통용된다.

교육 현장에서 각종 고입, 대입 설명회 자리에서 학부모가 아닌 어머니로 명명될 정도로 많은 여성들이 교육 주체로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정책은 노동자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고려는 거의 하지 않는다. 교육정책은 교육 주체를 어머니로 명명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시장노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결혼·임신·출산·육아기에 많은 여성들이 자의와 타의 그 사이 어디쯤에서 시장노동을 그만둔다. 시장영역에서 배제된 여성들에게 허락된 곳은 가족영역이다. 그런데 그 가족 또한 심상치가 않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압축적인 근대화를 겪는 과정에서 한국의 가족은 가족원들 간의 애정의 장소가 아닌 경제적 생존을 위한 장소이다. 가족은 생존단위이면서 동시에 계층 상승을 꾀하는 투자처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족 안에서 기혼 유자녀 여성들은 어머니 노릇 가운데서도 ‘교육’에 방점을 찍고, 가족의 생존을 위해 계급 재생산을 목표로 교육적 역할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계급 재생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학력은 개인의 사회경제적 성취 과정에 있어서 직업적 지위 획득이나 성공을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결과 어머니의 교육적 역할에 대한 강조가 흘러넘친다. 그리고 어머니의 교육적 역할은 단지 전업주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워킹맘들 또한 이러한 어머니의 교육적 역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들은 각자의 가족영역에서 일가를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올해 초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입시 코디네이터인 주인공이 자녀 교육에 헌신할 수 없는 워킹맘의 자녀들은 코디하지 않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사회에서 아이의 교육과 미래는 엄마의 헌신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엄마가 시장영역에서 경제적 주체가 되어 경력을 쌓아나가고 자리잡아가는 것은 아이교육과 배치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주변에서 ‘전업주부의 아이들이 워킹맘의 아이들보다 더 공부도 잘하고 더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워킹맘을 비난할 때 자녀들의 학업성취도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국사회 전반에 일하는 엄마들의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 여전히 여성은 엄마로서만 호명되며, 엄마로서만 정체성을 가진다. 그래서 2019년 현재에도 유자녀 여성들은 일과 자녀 사이에서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리고 2019년 20~30대 청년여성들은 채용 면접자리에서 ‘남·결·출’(‘남자친구 있어요?’, ‘결혼은 언제쯤 할거예요?’, ‘출산계획은 어떻게 돼요?’) 이야기를 듣는다. 서울메트로 성차별 채용처럼 채용 과정에서 생계부양자인 남성을 뽑기 위해 버젓이 여성의 점수를 조작한다. 노동시장 내 성차별은 단지 노동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교육정책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둘 간의 관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이 인과관계를 따지기 어렵다. 상상해본다.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갖고 남성과 동등하게 일해나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학교는 어떤 모습이고, 대학입학전형은 어떤 형태일까? 지금처럼 많은 여성들이 가족영역 안에서의 자신의 능력을 증거하기 위해 교육에 매진할까? 대학입시제도를 둘러싸고 수시냐 정시냐가 아니라, 입시제도가 개인 학생 뿐 아니라 교육 주체인 엄마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해야 한다. 그게 바로 성평등한 관점에서 교육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김양지영 여성학자
김양지영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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