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법원.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만 채용한 직군의 정년을 다르게 규정한 것은 성차별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국가정보원이 여성만 채용한 직군의 정년을 만 43세로 규정해, 남성만 채용한 직군의 정년 만 57세와 최대 14년 차이가 나도록 한 것은 남녀고용평등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 전산사식 이모씨와 김모씨가 제기한 상고심에서 31일 원고 패소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남녀고용평등법 제11조 제1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퇴직 및 해고에서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행정규칙의 내용이 상위법령에 반하는 것이라면 당연 무효”라고 밝혔다. 

이모씨는 1986년 국가정보원 기능 10급의 국가공무원으로 채용돼 출판물의 편집 등을 담당하는 ‘행정보조 직군 입력작업 직렬’에 근무하다 1993년부터는 신설된 ‘전산사식 직렬’에 근무했다. 그러다 1999년 3월, IMF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으로 이 씨가 속한 전산사식을 포함해 입력작업, 전화교환, 안내, 영선, 원예의 6개 직렬이 폐지됐다. 이 씨 역시 1999년 4월 30일 의원면직됐다가 5월 1일부터 계약직 직원으로 다시 채용돼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며 같은 업무를 계속 수행했다. 판결에 따르면 1999년 4월 국정원의 전산입력작업 채용 공고에는 응시 자격을 고졸 여성이라고 명시해 여성만을 채용해왔다.

2008년 이씨는 ‘국가정보원 계약직직원규정’에서 정한 전산사식의 근무상한연령인 만 43세가 됐다. 부칙에 따라 2년 더 근무한 이씨는 2010년 특수경력직공무원 중 계약직공무원 신분으로 퇴직했다. 

대법원은 이씨를 비롯한 원고들을 만 45세까지만 근무하게 하고 퇴직시킨 조치의 근거가 된 국가정보원의 내부 규정들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제11조 제1항 위반”이라고 봤다. 또 여성 근로자들이 전부 또는 다수를 차지하는 분야의 정년을 다른 분야의 정년보다 낮게 정한 것은 헌법 제11조 제1항에서 규정한 평등의 원칙, 헌법 제32조 제4항에서 규정한 여성근로에 대한 부당한 차별 금지 등을 위반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1999년 폐지된 6개의 직렬 중 전산사식, 입력작업, 전화교환, 안내 등 4개 직렬의 직원은 모두 여성"이며 “반면 영선, 원예 등 2개 직렬의 직원은 모두 남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사실상 여성 전용 직렬로 운영되어 온 전산사식 분야의 근무상한연령을 사실상 남성 전용 직렬로 운영되어 온 다른 분야의 근무상한연령보다 낮게 정한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비록 영선, 원예 분야에서는 자격증을 요구했으나 국정원이 폐지한 6개 분야를 단순기능분야로 분류한 점으로 보아 자격증의 유무가 단순기능분야 내에서 남녀의 근무상한연령에 현저한 차등을 두는 것을 정당화하는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건의 변호인단에 소속된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2012년 소송을 제기하면서 “국가정보원이 남녀 업무를 구분한 후 업무에 따라 정년을 달리 정한 것은 사실상 성별을 이유로 차별한 것”이라며 “이번 소송을 통해 노동에서의 남녀차별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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