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장르가 된 배우 김지미 “힘들어요? 끝까지 버티세요”
[만남] 장르가 된 배우 김지미 “힘들어요? 끝까지 버티세요”
  • 박선이 기자
  • 승인 2019.11.02 08:05
  • 수정 2019-11-01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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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된 배우 김지미 (상)
영화 인생 63년
여왕에서 양공주까지
380여명 여성을 연기
“집에서는 두 딸의 엄마 김명자
장 담고 국 끓이는 것도 내가 최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는 ‘한국 영화의 전설’ 김지미가 지난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서울에 왔다. 10월 초 부산국제영화제 일정과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강행군으로 힘들다던 그가 “여성신문이라면, 여성들에게 힘내라는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며 시간을 냈다. 짧은 커트 은발에, 짙은 낙엽색 머플러를 두른 그는 배우, 제작자 등 영화인으로 살아온 시간들 뿐 아니라, 두 딸과 손주 여섯이 주는 행복을 편안하게 전했다. 인생(사)과 영화편(하)으로 나누어 싣는다.]

배우 김지미.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은빛 커트머리로 날렵한 모습을 보여준 배우 김지미. 7일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아름다운 예술인상을 받는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름으로 하나의 장르가 되는 인물이 있다.
한국영화에서는 ‘기생충’으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봉준호’라는 장르로 호명되었다. 그러나 봉감독 보다 훨씬 먼저 하나의 장르로 불리운 인물이 배우 김지미다.
1957년 열일곱살 여고생으로 ‘황혼열차’를 통해 데뷔해 1992년 ‘명자, 아끼꼬, 소냐’에 이르기까지 김지미는 380여 편에 이르는 영화를 통해 전쟁과 분단, 가부장제 아래에서 아픔과 질곡을 살아낸 한국 여성을 생생하게 육화(肉化)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젊은 아내, 자기를 희생해 온가족을 먹여 살리는 양공주, 악의 소굴에서 삶을 도모하는 뒷골목 여인… 때로는 멜로드라마의 외피를 입고, 때로는 사극으로 변주되면서 한국영화는 김지미라는 장르를 얻었다.
개인사에서도 그는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감독 홍성기, 배우 최무룡, 가수 나훈아, 의사 이종구 등 당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던 남성과의 결혼/이혼 역시 김지미 장르를 완성하는 재료였다. “살아보니 그렇게 대단한 남자는 없더라. 남자는 다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 “나는 아내가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말한 신문 인터뷰 기사가 지금도 ‘어록’으로 회자된다.

- 1957년 ‘황혼열차’에서 1992년 ‘명자 아끼꼬 쏘냐’까지, 수많은 가까운 한국 여자를 연기하셨어요.
“참 힘들었던 시절 아녜요? 정말 아주 천박한 직업을 가진 여자들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아냈어요. 그게 제일 중요한 포인트였던 거 같애. 나는 왕비부터 식모, 양공주까지 안 해 본 역할이 없어요. 역할을 맡아서 출연할 때마다, 내가 이 사람이다, 생각하고 그 역할을 해냈어요, 어려운 삶의 조건에 있는 여성 역할을 할 때는 지지 않고 강인하게, 권력과 부를 쥐고 있는 역할을 할 때는 좀 나태하게, 그런 것을 즐겼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 대중 스타를 연구한 에드가 모랭은 “스타는 영광스러운 포로”라고 했어요. 스타는 연기를 하면서도 결국은 자기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하는 것이라고요. 김선생님은 지금 살아냈다, 해냈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스타이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과 실제 선생님하고 구별을 않잖아요?
“밖에서 보는 김지미와 자연인인 나는 전혀 달라요. 지금 여기는 김지미로 나왔지만, 일상에서 나는 그냥 하나의 소시민 김명자예요. 우리 집에는 영화 상패 하나 없어요. 사진 한 장 영화에 관계된 사진 한 장 없어요. 가족사진 말고는. 김명자로 살적에는 나의 편안함과 나의 생활이 있어요. 집에서 딱 들어가면, 완전히 180도로 달라요. 만들어진 김지미라는 그 틀 속에서 사는 게 아니라 나 자연인 삶을 살려고 굉장히 노력하죠. 텃밭 가꾸고, 장 담고 음식하고. 미국에서 두 딸네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손자들도 할머니 편안하게 생각하고.”(홍성기 감독, 최무룡 배우와 사이에서 딸을 하나씩 두었다. 딸들이 공부 잘하고 착실하게 자랐다고 뿌듯해한다.)

- 매일 밤 자장가 불러주는 엄마는 아니었지만, 자기 삶을 치열하게 산 엄마는 오히려 더 대단한 엄마이지 않았을까요, 딸들에게?
“애들도 그렇게 생각하죠. 지금까지도 우리 엄마는 만능 엄마라고 생각해. 뭐 안되는게 없고 못 하는 게 없고. 살림하면 무섭게 살림하고 음식하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무서울 정도로 하니까.”

그 햇빛 뜨거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모자도 안 쓰고 텃밭 가꾼다고, UCLA 치대 입학한 손주에게 주말마다 반찬이며 국이며 기숙사로 해 나른다고 자랑하는 이 사람이 배우로, 제작자로, 영화인협회장으로 한국 영화계를 쥐었다 놨다 한 ‘여걸 김지미’가 맞는지 영화 이야기로 방향을 돌렸다.

1957년 데뷔 직후의 모습.

 

- 한국영화의 황금기로 불린 1960년대는 수많은 여배우가 화려하게 등장했던 시기였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지켰는지요. 
“그때 남정임, 윤정희, 문희 세 사람을 청춘영화 트로이카라고 했어요. 이 셋은 다른 배우들과 따로 놀았어요. 그런데 나는 또 따로. 완전히 분류가 달라요. 나는 어린 나이 때부터 어른들 영화, 말하자면, 천박한 직업여성에서부터 고귀한 왕비까지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어요.”

청춘영화 트로이카로 불리던 배우들은 김지미보다 고작 너댓살 어렸다. ‘맨발의 청춘’ 같은 영화에서 여대생 역할로 인기였던 엄앵란은 심지어 네 살이나 위였다. 그린듯한 아름다움 안쪽으로 도시적인 도발성, 위태로움을 담고 있던 김지미는 최은희, 주증녀, 조미령 같은 바로 위 선배 여배우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한국 여성’ 캐릭터였다. 영화평론가 이연호는 이를 두고 “매우 아름답지만 결코 순해 보이지 않는다”며 “곧 이중성을 드러낼 것 같은 불안감을 자아낸다”고 분석했다. 캐릭터가 곧 그 자신이었다.

- 이혼하고 결혼할 때마다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견뎌내셨습니까. 인터넷 악성 댓글 때문에 삶을 버린 여배우, 여가수들이 많습니다. 
“그거 신경 쓰지 말아야 해요. 별걸 다 해도, 너희는 짖어라. 나는 갈 길 간다. 내가 예술원 회원인데, 몇 년 전 추천을 받았을 때 어느 분이 그 사람은 시집을 몇 번이나 갔다고 반대한대요, 그래서 말씀드렸어요. ‘김지미가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집 몇 번 갔기 때문인데, 김지미는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최선을 하다가 안 되니까 가정도 깨진 거다. 내가 무거운 짐을 계속 지고 살아야겠느냐. 할 일이 영화계에 너무 많은데, 내가 이 안 맞는 옷을 꼭 끼는 옷을 입고 버텨서 뭘 바라겠느냐. 내 생은 내 거다. 그랬더니 다들 웃더라고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9년 전에 내 회고전할 때 악성 댓글이 말할 수 없이 올라왔어요. 그냥 맘대로 짖어라, 하고 안 봤습니다.”

- 주목받는 위치에서, 오랜 시간 자기 일을 지켜내는데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요.
“끝까지 버티세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놓고 싶지. 아 이제 그만해야지, 결심하고. 그래도 내가 다 올라가서 내가 내려놔야지, 내가 하기 싫을 적에 내려놔야지. 다른 힘에 의해 쓰러지면 안됩니다.”

- 배우로서 뿐 아니라, 제작자로, 또 영화계 이익을 대표하는 협회 이사장으로 20세기 한국 영화 역사에서 정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내가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에요. 잘못된 거는 잘못됐다는 자백을 받아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속이 시원한 사람이에요. 내 철학이, 충실해야하고, 솔직해야 하고, 책무를 다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제 손자가 치과 공부를 하며 너무 너무 힘들다고, 그만하고 싶다고 해요, ‘그래. 그만해라. 근데 지금 그만두면 공부에 지는 거니까, 과정 다 해내고, 그 다음에 그만둬라. 그럼 된다’ 그랬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내 딸과 내 딸 같은 여성들이 그렇게 버텨내고 이겨내기 바랍니다.”

한국 영화의 전설 김지미가 여성신문 독자들에게 “버텨내고 이겨내라”고 말했다. ©여성신문
한국 영화의 전설 김지미가 여성신문 독자들에게 “버텨내고 이겨내라”고 말했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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