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캣맘의 보통 날] 이 세상에 못생긴 고양이는 없어
[사직동 캣맘의 보통 날] 이 세상에 못생긴 고양이는 없어
  • 조은 시인
  • 승인 2019.11.06 20:30
  • 수정 2019-11-06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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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동 캣맘의 보통 날] ②
어미 1호 자리 차지한 3호
겁쟁이 허당이던 수고양이가
어느 덧 토끼 잡는 포식자로 성장

[20년 넘게 재개발이 진행 중인 서울 종로구 사직동 한가운데 사는 시인 조은은 '사직동 캣맘'으로 불린다. 우연히 함께 살게 된 고양이들과 동네를 떠도는 고양이들을 수년 째 '모시는' 그가 사직동 터줏대감 고양이들과 고양이라는 필터를 통해 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편집자주)]

부산 영도 길고양이. ⓒ여성신문
부산 영도 길고양이. ⓒ여성신문

 

1호 고양이는 두 번째 출산에서 세 마리를 낳았다. 새로 태어난 녀석들 중에는 첫 출산의 2호만큼 눈길을 사로잡는 고양이는 없었다. 한 녀석만 그럭저럭 볼만했다. 이번엔 눈에 띄게 예쁜 고양이가 없다는 내 말에 고양이를 잘 아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 못생긴 고양이는 없어!”

“고양이는 어디에 있어도 그림이 된단다, 얘야. 네가 고양이를 볼 줄 몰라서 그렇단다.”

이미 아홉 마리의 고양이가 지붕 아래 깃들어 살면서 마당으로 내려와 밥을 먹고 볼일을 보는 상태였지만, 나는 여전히 고양이가 무서웠다. 한편 그동안 형성되었던 나의 인맥들이 상당히 바뀌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극단적으로 고양이를 싫어하면서도 우리 집을 드나드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제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고양이를 먹여 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분기탱천하는가 하면, 끝없이 내 정신을 문제 삼았다. 우정이 지나친 그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사료와 간식을 보관하는 수고를 감수하느라 나는 점점 관계에 지쳐가고 있었다.

18년 가까이 같이 살았던 개를 좋아해서라기보다 가여워 품에 안았듯이 나는 고양이 역시 비슷한 감정으로 받아들였다. 우연한 캣맘이 된 뒤로 나는 ‘사랑의 힘이 더 강할까, 측은지심의 힘이 더 강할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측은지심이 사랑보다 더 강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나서야 측은지심이야말로 사랑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있는 것임을 뒤늦게 깨닫곤 하지만.

다시 고양이의 외모로 이야기를 되돌리자면, 셋 중 외모가 가장 볼 만 했던 노랑이는 피디 집으로 입양되어 ‘보리’가 되었다. 두 녀석은 여전히 우리 지붕 위에서 옹색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 번호도 받지 못한 그 고양이가 우리 집 지붕과 붙어 있는 빈 집의 지붕에서 떨어져 죽었을 때 나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죄책감을 느꼈다.

지붕 위에서 일가족이 내는 이상야릇한 울음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나는 대문 밖으로 후다닥 뛰어나갔다. 시야가 넓은 거기 서서 우리 집 지붕을 올려다보니 고양이 일가족이 한 방향, 한 지점을 내려다보며 구슬프게 울부짖고 있었다. 검정도 회색도 아닌 거무죽죽한 털빛의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1호 고양이가 두 번째로 낳은 새끼는 딱 한 마리만 남았다. 누리끼리한 털빛을 가면처럼 쓴 3호였다. 지붕 위 고양이들은 침입자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스티로폼 상자를 빼앗겼고, 그때마다 일가족의 구슬픈 곡성이 골목에 울렸다. 나란히 스티로폼 상자를 놓아줘도 다 쓰는 것도 아니어서, 늘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유난히 칭얼대는 3호에게 집을 양보하고 나의 1호 고양이가 떠나갔다. 꽤 가슴 아픈 일이었다. 다행히 멀리 가진 않고 골목에서 내가 주는 밥을 먹고 있었다. 마주칠 때마다 집으로 가자는 내 말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1호가 몇 달 만에 딱 한 번 돌아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3호인 아들놈이 또 칭얼대기 시작했다. 1호는 처음 우리 집에 모습을 나타냈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삼십여 분 정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사라져버렸다.

3호를 볼 때마다 나는 심기가 상했다. 녀석은 이제 내게 ‘어미를 쫓아낸 못생긴 아들놈 3호’로 길게 불렸다. 1호가 첫 배에 낳은 2호 고양이(3호의 누나)는 작은엄마라고 불렀다. 나를 애태우는 1호는 큰엄마가 되었다. 이쯤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있다. 밥을 주는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름이 있든 없든 나는 녀석들에게 급식을 할 테지만, 내가 지은 이름으로 불리며 길에서 고된 삶을 사는 생명들을 보는 것은 마음이 더 힘들 터였다.

어미를 내쫓은 3호는 허당이었다. 우리 집 지붕을 넘어오는 모든 고양이들에게 쫓기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돌아왔다. 녀석은 마당으로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해 쳐놓은 투명한 썬라이트 위로 당당히 모습을 나타냈다. 조금 작은 형체도 보이는 것으로 봐서 같이 사라졌던 작은엄마도 돌아온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자세히 올려다보니 작은엄마라고 여겼던 형체는 토끼였다. 3호가 제 덩치에 가까운 토끼를 전리품처럼 물고 왔던 것이다. 나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고, 녀석은 ‘에잇, 시끄러!’ 하는 표정으로 토끼를 물고 다시 사라져버렸다. 대체 녀석은 어떻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토끼를 사냥했던 것일까? 사흘 뒤 돌아온 포식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늠름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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