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의사 밝혔음에도 잡은 손
레깅스 차림의 여성 몰래 찍은 행위
모두 무죄 판결 받아 논란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무관함.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무관함.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버스 안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스마트폰을 이용해 몰래 촬영한 남성과 거부의사를 밝혔음에도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은 남성에 각각 무죄가 선고돼 논란이 일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성적 수치심’이 판결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기준이 되는 성적 수치심에 대한 판단이 법관에 따라 달라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의견과 피해자의 신체 자기결정권을 거스른 행위 자체를 문제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오원찬 부장판사)는 10월 28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 된 피고인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하차하려고 출입문 앞에 서있던 레깅스 차림을 한 B씨의 하반신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8초 가량 동영상 촬영했다. 

재판부는 2016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피해자의 옷차림, 노출 정도, 촬영 의도와 경위, 장소·각도·촬영 거리, 특정 신체 부위의 부각 정도 등을 살폈다. 항소심 재판부는 “레깅스는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피해자 역시 이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다”며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지난 20일에는 수원지법 형사12부(김병찬 부장판사)가 “손은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로 보기 어렵다”며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C(36)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C씨는 노래방에서 부하직원 D씨가 거부 의사를 표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해당 사건 역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접촉한 신체부위는 손으로서 그 자체만으로는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신체부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다른 신체부위를 쓰다듬거나 성적언동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은 점을 보면,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성적 수치심은 누구의 감정인가
두 사건 모두 성적 수치심이 주요한 쟁점이 됐다. 형법 제298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실제 사건에서는 판례상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는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인 경우로 보아 넓게 인정된다(대법원 2012.7.26. 선고 2011도8805). 관건이 되는 것은 추행에 관한 것인데, 대법원 판례는(200.4.26 선고2001도2417 등) 추행을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써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본다. 아울러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주의 객관적 상황 등을 살핀다. 

그러나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닌 성적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보고 성적 수치심을 주요하게 살피기 때문에 수사관,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추행 성립 여부가 달라진다. 일례로 2012년 서울중앙지법은 ‘코’를 “사회 통념상 성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신체가 아니다”라고 판단했으며 같은 해 대구지법은 ‘윗가슴’을 ‘젖가슴’과 구분해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주위 객관적 상황을 살피고도 무죄 판결이 난 사례도 있다. 대법원은 2015년 직장 상사가 부하직원을 자기 방으로 불러 “자고 가라”며 손목을 잡은 사건에 대해 성추행으로 판결한 1,2심의 판결을 뒤집고 “추행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손목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부위가 아니다”라고 봤다. 여기서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은 고려되지 않는다.

불법 촬영을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는 아예 명시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조건으로 달고 있다. 성적 수치심이 관건이기 때문에 여부를 따지는 법관의 판단에 따라 무죄 선고가 나는 사례가 왕왕 있다. 지난해 2016년 9차례에 걸쳐 지하철과 학원 강의실 등에서 교복 치마 등을 입은 여성의 하체 부위를 촬영한 20대 남성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남성이 하체 부위를 찍기는 했으나 통상적으로 노출되는 부분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대법원이 2008년 9월 카메라 등 이용 촬영에 대한 법률에 대해 “피해자의 성적 자유 및 함부로 촬영 당하지 않을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명시한 데서 출발한다. ‘성적 자유’와 ‘함부로 촬영당하지 않을 자유’ 두 권익 모두 보호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강제추행과 마찬가지로 성적 수치심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양형이 들쭉날쭉하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법원의 역할은 사회적 범죄 예방이라는 측면도 있는데 무죄 판결이 난 레깅스 사건과 손 사건은 둘다 문제적인 판결들”이라며 “수치심이라는 용어 자체가 법에서 없어져야 한다. 피해자의 의사를 거슬러 행위를 한 것 자체를 문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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