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임은정 검사와 여성 기사 ‘브라다만테’
[반하라 칼럼] 임은정 검사와 여성 기사 ‘브라다만테’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19.11.01 08:00
  • 수정 2019-10-31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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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검찰 내부 문제 공론화한 임은정

소설 『존재하지 않는 기사』
속 여성 기사 처럼
임 검사가 이뤄야 할 미래는
정의와 공정의 공화국
『존재하지 않는 기사』(이탈로 칼비노, 이현경 번역, 민음사 펴냄)
『존재하지 않는 기사』(이탈로 칼비노, 이현경 번역, 민음사 펴냄)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1923-1985)가 쓴 소설 『존재하지 않는 기사』(1959년작, 이현경 번역·민음사 펴냄)에는 전설적인 여성 기사 ‘브라다만테’가 나온다. 그는 짙은 보랏빛이 도는 긴 청색 겉옷을 갑옷위에 걸치고 청색깃털들이 날리는 투구를 쓰고 싸우는 남녀 불문 최고의 전사다. 브라다만테는 본래 샤를마뉴 왕의 12기사 중 유일한 여전사로서 ‘루드비코 아리오스토’의 서사시 기사문학인 『광란의 올란도』(1535)의 주요 인물인데 칼비노의 소설에 재 등장하면서 우리가 ‘선망하는 자매’와 같이 가까운 인물이 되었다. 소설 속 브라다만테에서 ‘임은정 검사’가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브라다만테가 성취하려는 투철한 기사도는 범죄로부터 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하고 정의를 구현하려는 임은정 검사의 소명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기사문학의 팬이었을 칼비노가 흰 종이에 말이 달려나가는 것과 같이 박진감있게 쓴, 브라다만테가 갈망했던 전사의 삶을 보자.

“그녀가 전사의 삶을 시작한 것은 엄격하고 정확하고 엄밀하고 도덕규범에 상응하는 것, 무기나 말을 다룰 때의 아주 정확한 움직임과 비슷한 모든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다….갑옷과 무기를 걸치자 다른 사람이 되었다… 완벽성은 바로 영혼의 완벽성을 나타내는 표시…전쟁터에서 눈부신 전사가 되고 싶은… 용장들에게 도전하고 그들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고 대담하게 행동, 완벽하게…” 브라다만테는 이같은 전사의 포부를 안고 사라센 왕과 싸우는 샤를마뉴 왕의 전투에 뛰어든다. 거친 전장에서도 그는 완벽한 기사가 되길 꿈꾼다.

거기엔 그에게 영감을 주고 귀감이 되는 완벽한 기사, ‘존재하지 않는 기사’가 있었다. 능란한 창검술을 발휘해서 승리는 물론, 피투성이로 전투를 치르고도 먼지 하나 없이 하얗게 반짝이는 갑옷과 투구를 그의 흠결없는 영혼과 같이 견지하는, ‘몸이 없이’ 갑옷과 투구만으로 존재하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였다. 하지만 그는 사라지고 다른 동료 기사들은 그의 꿈에 먹칠을 하고 전장의 현실을 역겹게 한다.

“느릿느릿 대충 전투하고 근무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술독에 빠지거나… 추접거리며 따라다니는 얼간이들… 이 군대에는 술주정뱅이와 사나운 사람들밖에 남지 않았어. 신비한 기하학을 알고 질서와 그 질서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규칙을 아는 사람은…”

과부와 고아를 돕고 악인을 응징하려고 모험에 나섰던 우리의 기사, ‘돈 키호테’가 내건 순수한 기사도 정신이나 브라다만테가 새겼던 용기와 훈련으로 무장된 완벽한 기사상은 전장의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브라다만테가 직면했던 현실의 전장은 한국의 검사 임은정에게 예외가 아니었다. 더불어 임정은은 브라다만테는 겪기 않았던 전장의 시련을 견뎌야했다. 그는 법리를 바탕으로 원칙에 따라 범죄를 밝히고 정의를 세우려했지만 이는 이룰 수 없는 이상이 돼버렸고 현실로 그에게 다가온 것은 조롱과 모욕, 거기에 생존마저 위협하는 검찰 조직의 억압이었다.

임 검사는 2012년 12월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적절하게 선고해달라”는 이른바 ‘백지 구형’하라는 검찰 내부 방침을 어기고 피고에게 무죄 구형을 강행하는 기개를 떨치며 공정한 검사의 본보기를 세웠다. 그 댓가로 그는 조직에서 징계받고 동료들과 조직으로부터 소외 받게 된다. 여성인 임 검사는 직무에서 겪는 부조리 외에도 위선적이고 음탕한 동료 검사에게 성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검찰조직의 여성 검사들이 성희롱엔 수시로 노출되어 있고 심지어 성폭력을 당해도 가해검사들을 법정에 세우기도 거의 불가능한 검찰 조직의 ‘특수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이들 성폭력 검사에 대한 은폐·축소 수사를 고발한다. 그는 미투 운동을 선도한 서지현 검사와 연대해 검찰 조직의 불법적 행태에 대한 내부고발자가 되어 검찰개혁에 앞장서는 전사로서 기염을 토하고 있다. 임 검사는 검찰 내 합리적 권리행사를 막고 그를 ‘항명’ 검사로 부르며 억압하는 상명하복 조직의 문제를 고치고 조직적 범죄를 단죄하기 위해서 전력질주의 각오로 나선 것이다.

칼비노의 소설에선 샤를마뉴 왕의 전투기사들과 구별되는 ‘성배기사단’이 나온다. 침묵의 기사단으로 불리는 이들은 ‘성배’의 지도를 따르는 특별 기사단이다. 그들은 숲 속에서 명상하면서 인근 마을인 ‘쿠르발디아’에서 ‘성스러운’ 그들이 먹을 것을 공납 받고 이를 거부하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살해한다. 저항하는 주민들을 살상도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단지 ‘높은 신분의 성배기사단’이라는 이유다. 거기에는 ‘성스러운’ 검찰의 내부자 임 검사와 같이 ‘성배기사단’의 내부에 들어갔다가 성배기사단이 쿠르발디아 주민들에게 저지르는 범죄를 보고 충격 받은 기사, ‘토리스먼드’가 등장한다. 토리스먼드는 감히 싸울 생각을 못하는 주민들을 독려해 함께 싸워서 성배기사단을 쫒아내고 마을을 지켜낸다. 후에 높은 기사 신분의 토리스먼드가 쿠르발디아 주민이 되고 싶어하자, 마을주민들은 자신들과 같이 동등한 평민이 되어야만 그를 받아주겠다고 한다. 기사 토리스먼드의 하인은 “어떻게 내가 모시는 기사님과 동등한 주민이 될 수 있냐”고 묻자, 주민들이 답한다. “자기가 존재하는 지도 모르는 하인도 배우겠지요. 우리도 우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 존재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는 거랍니다.” 임은정 검사는 어떤 용장도 나설 수 없는 위험한 전투에서 생존하며 자신이 존재하는 법을 배워왔다. 그가 존재하는 법을 보면서 우리도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배워가고 있다.

칼비노의 마지막 글은 멋지다. 브라다만테의 말이다. “난 네 말 안장 위에 올라탔다. 길들지 않은 너, 비싼 값을 치른 보석같은 예감, 정복해야 할 나의 왕국, 미래여…” 임 검사가 정복해야할 미래는 정의와 공정의 공화국이다. 우리는 평등한 쿠르발디아의 주민과 같이 임 검사의 존재하는 법을 배우면서 보석같은 예감으로 공정한 미래의 정복을 향해, 달리는 말 안장의 초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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