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먼 인 할리우드’

영화 배우이자 감독인 나탈리 포트만은 “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객체가 되는 느낌을 받아왔다. 내 세계관을 갖는 것과는 정반대 개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 배우이자 감독인 나탈리 포트만은 “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객체가 되는 느낌을 받아왔다. 내 세계관을 갖는 것과는 정반대 개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마노엔터테인먼트

응어리졌던 마음 속 외침이 수십 명의 목소리로 터져 나온다. 거대한 산업 내 문제가 적나라하게 고발된다. 3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우먼 인 할리우드’는 할리우드 산업 내 만연한 성차별과 기회의 불균형을 영화배우와 감독, 제작자, 배급자, 미디어 종사자 등 96명을 인터뷰 해 풀어낸 작품이다. 메릴 스트립, 나탈리 포트만, 케이트 블란쳇, 클로이 모레츠 등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얼굴도 대거 등장한다.

다큐멘터리는 할리우드에서 여성 배우(캐릭터)들이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거나 약자로 대부분 묘사되며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 자체가 소수였다는 사실을 실제 산업 종사자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마저도 등장하는 여성들은 가슴이나 엉덩이 같은 신체부위가 부각되는 등 남성 감독들의 시선으로 그려진다는 점을 전한다. 감독이자 배우인 로즈 맥고언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지 않는다며 “남자 촬영감독과 남자 감독의 눈으로 나 자신을 보게 된다”고 고백하는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최근의 문제들만 짚었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반쪽짜리가 됐을 것이다. 할리우드 초기인 무성영화 시절만 해도 많은 여성들이 연출과 제작, 각본에 참여했던 영화 시장이 왜 한쪽으로 기울게 됐는지 다큐멘터리는 시작점을 짚어낸다. 할리우드가 음향 장비 등 기술 개발에 매진하면서 은행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부유한 지배층인 남성의 지배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188편의 작품 장면들을 통해 여성 캐릭터가 어떻게 그려지는지 사례를 보여준다. 영화 산업 내에서 여성들은 온갖 차별을 받지만 오히려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의 관객 수입이 좋다는 객관적 통계자료를 제시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많은 여성들이 할리우드와 각종 미디어 판에서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싸워왔다는 역사적 사실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이 판이 여성들에게 외로운 길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다만, 96명의 인터뷰가 96분 내내 쏟아져 관객이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소화하기 쉽지 않다.

'우먼 인 할리우드' 메인 포스터. ⓒ마노엔터테인먼트
'우먼 인 할리우드' 메인 포스터.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와 미디어가 좀 더 균등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강한 여성 캐릭터가 활을 쏘는 모습이 나오는 ‘메리다와 마법의 숲’과 ‘헝거 게임’ 개봉 이후 한 양궁 수업에 여자 아이들 비율이 105% 증가한 것은 의미가 있다. 두 여성이 총으로 트럭을 터뜨리는 ‘델마와 루이스’(1991)를 본 배우 산드라 오는 “쾌감이 어마어마했다”고 말하고 ‘엑스맨’ 시리즈 제작자 로런 슐러 도너는 “영화를 본 여성들이 해방감을 느낀 것 같다”고 말한다. 개인의 삶은 다수를 구성하는 사회와도 연관돼 있다.

2017년 10월 할리우드에서 ‘미투 운동’이 불면서 남성 권력의 치부와 민낯이 드러났고 반대로 여성 배우들과 인력들은 지지와 응원을 받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원제는 ‘This changes Everything’(이것은 모든 것을 바꾼다)이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와 ‘미투 운동’처럼 하나의 연대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한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에게 할리우드가 자유로운 공간이 되기까지는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큰 숙제를 남긴 느낌이다. 전체 관람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