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은 ‘성별에 기반한 성적 괴롭힘’
그러나 ‘희롱’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행동으로 실없이 놀림”

해외에선 피해자의 모욕감·혐오감 보다
원치 않는 성적 행위 유무로 판단

1993년 10월 19일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모습. ⓒ한국여성단체연합
1993년 10월 19일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모습. 이종걸(현 국회의원)·박원순(현 서울시장)·최은순 변호사(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가 공동대리인단으로 나서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소송 사건이 시작됐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희롱이 법제화된 지 올해로 20년이다. 1993년 서울대 도서관 앞에 대자보가 붙었다. 교수의 성적 괴롭힘과 그에 대한 불응으로 조교 재임용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자보로부터 시작된 이 낯선 행위를 둘러싼 싸움은 이것을 성희롱이라고 명명하고 여성의 인격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우리의 일상에 정착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성희롱이 법적 용어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95년에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현 양성평등기본법)에서다. 위에서 언급한 이른바 ‘서울대 신교수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법에서는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사업주는 성희롱의 예방등 직장 내의 평등한 근무환경 조성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성희롱이 어떤 행위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 후, 고용상의 성차별을 금지한 실체법인 남녀고용평등법은 제3차 개정(1999년)에서 ‘직장 내 성희롱’을 “사업주,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인 언어나 행동 등으로 또는 이를 조건으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거나 또는 성적 굴욕감을 유발하게 하여 고용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 정의는 2001년 8월 14일 남녀고용평등법 전부 개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즉, 직장 내 성희롱이란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남녀고용평등법 제2조제2호)

우리가 일상에서 또는 법에서 사용하는 성희롱은 외국에서 사용되는 성적 괴롭힘(sexual harassment)의 한국적 표현이다. 그러나 희롱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행동으로 실없이 놀림”이다. 그렇다면 성희롱이란 성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말이나 행동에 의한 실없는 놀림이 된다. 이처럼 성희롱은 성적 괴롭힘, 즉 젠더 권력관계에 기반 한 성적 침해를 제대로 표현한 용어라고 보기 어렵다. 개념과 용어가 불일치하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한다.

영국, 독일, 스웨덴 등에서는 성희롱을 평등법, 차별금지법 등에 괴롭힘의 하나의 유형인 성적 괴롭힘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정의 규정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우리의 ‘모욕감’, ‘혐오감’ 대신 “원치 않는” 성적 행위(언어적, 신체적 등)로 인해, 존엄성이 침해되거나 위협적, 적대적, 비하적, 굴욕적, 모욕적 환경이 조성되는 경우, 그 성적 행위에 응하거나 거부하는 것에 의해 고용상의 이익 또는 불이익이 수반 되는 경우를 성적 괴롭힘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모욕감, 혐오감을 느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치 않은 성적 행위’가 있었는지, 그 성적 행위의 결과 위협적, 적대적, 굴욕적, 모욕적 또는 불쾌한 노동환경이 조성되었는지, 아니면 그 성적 행위에 응하거나 거부하는 것에 의해 고용상의 이익 또는 불이익이 발생했는지가 성적 괴롭힘의 성립 기준이 된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성희롱을 ‘그 성적 언동으로 인해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했는지’로 정의하고 있어 성별에 기반 한 성적 괴롭힘, 즉 성차별의 한 유형이라는 점을 탈각시킴으로서 성희롱을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행위자와 피해자와의 갈등, 시끄러움 정도로 취급하게 한다. 이로 인해 성차별 없는 직장 환경 조성이라는 성희롱 법제화 목적은 비가시화 된다. 성희롱 정의를 재구조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성희롱이 갖는 성별에 기반 한 성적 괴롭힘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하게 하고,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인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이 아닌 원치 않는 행위와 그로 인한 노동환경의 변화에 주목해 이 점이 명확하게 표현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성희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성희롱 정의를 제안하고 싶다.

“‘성적 괴롭힘’이라 함은 업무, 고용, 교육 등 기타 관계에서 그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등과 관련하여 원치 않는 성적 언동 등으로 인해 타인의 존엄을 침해하거나 위협·적대·비하·굴욕·모욕적인 환경을 조성하거나, 그 성적 언동을 요구하는 행위 및 이에 대한 불응 또는 굴복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이익 공여의 의사표시를 하는 행위를 말한다”라고.

문제는 성희롱 법제화 20년 역사 속에서 성희롱 사건에 대한 판례와 결정례가 축적되어 있고, 성희롱 성립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일정의 경향성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성희롱을 새롭게 정의할 경우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성희롱 법제화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할 때 성희롱 정의의 재구조화는 성평등한 직장 환경 조성, 성별에 의해 인격권과 노동권이 침해되지 않는 조직문화, 거기에 성희롱을 둘러싼 젠더와 연령별 갈등의 완화를 위해 하루빨리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차별금지법 또는 성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그 법에 성희롱을 성적 괴롭힘으로 위와 같이 정의하고, 이 정의 규정이 다른 법률에 영향을 미쳐 법적 정비가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차별금지법 또는 성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그 길에서 만나야 한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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