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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전기로 다니는 철계에서 떠도는 조모씨를 가장 괴롭히면서, 가장 자주 만나는 종족은 뭐니뭐니해도 쩍벌남이다. 이게 뭔 남이냐면, 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남정네다. 또 팔을 쩍 벌리고 신문을 보는 남정네다. 전철 안에서 곰곰이 관찰한 바(하도 심심해서),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다리나 팔을 벌리는 각도가 현저히 넓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아주 오래 전에!) 여름에도 에어컨 쌩쌩 도는 전철 안이 뜨거운 이유가 있다. 다리와 다리 사이에 흐르는 원한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왜 이리도 다리를 펼치지 못해 안달이란 말이냐? 나름대로 조씨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려 했으나, 그 모든 것과 별로 친하지 않은지라 지 맘대로 추측하기에 이르렀다. 추측도 역시 입시세대답게 5지선다형이다. 1. 다리와 다리 사이에 존재한 물건에 대한 예의다. 2. 그 물건에겐 항시 통풍이 필요하다. 3. 남자란 종족은 원래 앉은 자세시 다리 각도가 45도 이하로 좁혀지지 않게 생겨먹었다. 4. 그렇게 해서라도 옆자리 여자와 스킨십을 원한다. 5. 나름대로 똑바로 앉은 건데, 다리가 O자라서 그렇게 휘어진다.

정답? 물론 모른다. 입맛대로 골라봐라. 인간 유전자공학적으로 탐구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귀찮아서 관뒀다. 아무튼 ‘내추럴 본 쩍벌남’이건 후천적(실은 후진적) 요인에 의한 쩍벌남이건, 옆자리 앉은 죄로 생판 모르는 남정네와 다리와 다리가 맞닿는 뜨거운 전철 안을 연출하고 싶지 않은 조씨는(물론 꽃미남일 경우엔 다를지 모르나, 쩍벌남 꽃미남을 만나본 적이 없다) 대책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대책을 사용할 분은 사용하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부작용이 따름을 꼭 상기하고, 차라리 그 부작용을 감수하고 말지, 생긴 것도 꼭 썩어문드러진 고등어 자반 같은 남정네와 다리 살갗 맞대고 한 시간을 앉아 가는 짓은 차마 못하겠다는 이들은 아래 사항을 실천해도 절대 말리지 않겠다. 다만, 실천 후, 일어날 반응을 면밀히 체크한 후, 본인에게 꼭 알려주기 바란다. 이유? 나도 한 번 해보게. 그래, 나 소심하다. 그럼 대책은 뭐냐?

1. 쩍벌남을 발견하는 동시에, 노출된 팔 다리를 벅벅 긁는다. 그리고‘니베아’ 뭐 이렇게 대놓고 써있는 로션말고, 정체를 알 수 없으나 뭔가 강력한 연고로 보이는 것(실은 크림)을 꺼내, 벅벅 바른다. 그래도 쩍벌남이 다리를 오므리지 않을 시, 핸드폰으로 미리 말 맞춰둔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 걸어, 요즘 피부병 때문에 죽겠다고 우는 소릴 한바탕 해댄다.

이거 너무 더러운 방법이라고?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느냐고? 할 수 없다. 세상살이가 원래 더럽다. 안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당신 아직 더러운 맛을 못 봐서 그렇다. 그래, 나 더러운 맛 많이 보고 살았다. 그렇다면 우아하고 소심한 방법은 하나다. 2. 예고 없이 등장하는 쩍벌남을 처치하기 위해선 내 어깨 넓이를 능가하는 넓이를 지니되, 딱딱한 가방이 필수다. 안 되면 그 정도 넓이 가방 안에, 두께 좀 되는 딱딱하고 큰 책을 한 권 정도 넣고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아니면 우산도 좋다. 그럼 이걸로 뭐하냐? 뭐하긴. 다리 위에 살포시 얹고서, 쩍 벌린 그의 다리를 끼이잉 끼이잉 미는 거지. 가방으로. 으메 소심한 거. 맞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어찌 다 대범하게 살 수 있단 말이냐? 더구나 소심하지 않게 쩍벌남을 처치하려다, 온갖 이들에게서 쏟아질 눈총에 소심줄 같은 쪽팔림에 얼굴이라도 붉어진다면,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 똥싼 놈이 큰 체 하는 격이고, 피해자가 수갑 차는 격이다.

이 모든 변칙스럽고 실은 변태스러운 방법이 방법 같지 않고, 정말 같잖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겐 단 한 가지 방법만 있을 뿐이다. 최대한 근엄하고 공식적인 목소리와 눈빛과 눈썹모양과 입매를 만든 후에, 사태 파악 못하고 쩍 벌린 다리로 태연히 신문을 읽거나 태연히 (뵈지도 않는) 먼 산 보는 척하는 남정네에게 말하라.“지대하게 펼쳐진 이 다리 좀 오므려 주시겠어요.” 아니면 고전적 어법을 사용해서 우아함을 더할까? “청산리 벽창호야. 다리 벌림을 자랑 마라. 일족고우(一足go)하면, 도로 올까 두려우냐? 뱃살이 남산만하니 내려서 간들 어떠리.”

아. 이것들이 너무 사적인 방법이라고? 그럼 전철을 지키는 기동수사대에 전화라도 걸어, 쩍벌남의 행동 양태를 교정해달라고 해야할까? 그런 게 있긴 하나? 그럼 어디다 전화를 걸어야 하지? 아. 세상 살기 정말 힘들다. 생각 같고 성질 같아선 이렇게 외치고 싶다. “인간들아, 다리 좀 오므리고 살아라. 네 다리가, 개 다리냐?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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