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의 지배에 저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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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 환자는 거울속에서 괴상하게 부풀려지고 왜곡된 이미지로 자기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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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함의 이미지는 보통 여성의 몸을 통해서 나타나듯이, 날씬한 몸을 여성의 몸으로 간주한다.◀

영화로까지 만든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첫 머리는 특이하다. 날짜는 1월1일 일요일. “새해가 싫다, 모든 게 싫다”편. 새해 벽두부터 세상에 무척 불만이 많은 이 여인네 일기의 첫 마디는? 몸무게다. “몸무게 58.5kg. 알코올 14단위. 담배 22개비. 섭취 칼로리 5,424cal.”그 다음 ‘오늘 먹은 음식’ 리스트 주르륵. 그것도 엄벙덤벙 리스트가 아니다. 감자 몇 조각에 디저트로 나온 음식에 쓰인 재료까지 일일이 적은 시시콜콜 리스트다. 거기다 그 날 일기 마지막 구절은 이거다. “그걸 모두 먹어치우고, 담배도 피워버리자.”

이쯤이면 정상 아니게 보인다. 브리짓 존스는 다이어트 중독자에 식욕장애를 지닌 인물? 하지만 실제 브리짓은 특이할 게 없다. 평균적인 런던 여성이다. 물론 서울 여성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더하면 더했지. 살에 대한 공포 없이 초콜릿이나 기름진 음식을 한밤중에 양껏 먹어본 적 있나? 남들이 보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체중계에 올라설 수 있나? “어머, 저번 때보다 좀 마른 거 같아요.”소리에 기뻐했던 적 정말 없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뚱뚱함은 죄악이다.

먹고 게워내고 먹고 게워내고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 페미니즘·서구문화·몸>(수전 보르도 지음, 또 하나의 문화) 책제목만 보자면, 뚱뚱한 인간의 독백처럼 들리는 이 책이 말하는 무거움은 킬로그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실제론 킬로그램이 대수냐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무거운데? 바로 몸에 꽁꽁 얽매인 강박관념의 무거움이다. 이 강박관념이 ‘몸’을 무겁게 만들고, 여성들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바로 식욕 장애다. 일명 거식증 혹은 폭식증. 그런데 이 거식증이 발견된 건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발생 시기가 가부장적 문화와 후기 산업자본주의가 교차하는 때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여자들은 먹고 토하고 또 먹으며, 음식으로 자신을 고문하는 걸까? 그건 아주 복잡하다.

수전 보르도는 역사적으로 몸을 바라보는 태도부터 시작한다. 바로 정신과 육체를 쓱싹 둘로 나눠놓는 이원론적 태도다. 거기다 중요한 ‘순수 이데아, 절대 정신’은 곧 바로 남성이다. 반면에 본능적이고 유아적인 육체, 바로 ‘몸’은 여성이다. 또 여성은 (성경 속 이브처럼) 남성을 악으로 유혹하는 자다. 또 그간 모든 묘사는 여성의 식욕을 부적절한 것, 여성의 탐식을 사적이고 벗어난 행위로 표현했다. 결국 식욕의 억제와 식욕에 대한 부정이 여성성의 특징이 되게 한다. 결국 부끄러워하면서 은밀하게 왕창 먹어대는 것이다. 거식증의 시작이다.

하지만 “거식증은 자신의 몸을 ‘잘못 인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배워 탈이다. “거식증 환자는 스트레스를 주는 우리 문화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또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거식증에 걸린 여자가 거식증에서 발견하는 것은 날씬한 몸이 아니다. 그것은 “월등한 의지와 통제의 본보기를 보여 줌으로써 얻게 되는 자기 정복과 극기, 전문 지식, 그리고 타자를 지배하는 힘의 윤리와 미학”이다. 결국 우리 몸이 권력 관계를 얼마나 잘 섬기는가를 설명해주는 가장 놀랍고도 강력한 예가 바로 거식증인 셈이다. 하지만 그 여자가 간과한 게 있다. 그 경험은 위험하다. 자기 도취에 빠지게 하며, 습관이 돼버린다. 잘못된 권력에의 도취로 죽을 수도 있다.

몸은 사회 통제가 실천되는 장

수전 보르도는 한 발 더 나아가 성형수술을 단지 예쁘게 보이려고 고치는 것에서 “삶을 살 만하고 즐거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개인적인 선택으로서, 그러한 성형 수술을 해방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까지 격상한 페미니즘 조류를 살핀다. 일면 동감하지만, 그녀는 그 이면에 깔린 것을 보라고 주문한다. 거기엔 복잡하고 촘촘하게 제도화된 가치와 그 실현의 체계가 숨어있다. 몸은 바로 문화의 텍스트다. 하지만 그 뿐 아니다. 사회적인 통제가 직접적으로 실천되는 현장이다. 그런데 몸을 얽어맨 이 문화는 힘이 세다. 그리고 복잡하다.

하지만 못 풀 것도 없다. 고르디우스의 매듭도 결국 풀리지 않는가? 페미니스트에게 필요한 건 이 얽힌 실타래를 유지시키는 체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다. 그리고 칼이다. 그래서 수전 보르도는 말한다.“몸은 투쟁의 장이다. 그 곳에서 우리는 순응과 젠더의 정상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젠더의 지배에 저항하는 일상의 실천을 위해서 애써야 한다.”그건, 당신 몫이다. 하지만 “문화가 그들에게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제시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정해지고 공유된 것”임을 밝히는 게 바로 페미니즘 정치학의 핵심이다.

‘몸’을 둘러싼 모든 이론을 한 자리에

미국 켄터키 대학교 영문학 교수이자 여성학 협동과정 교수인 저자는 온갖 광고부터 푸코, 데리다, 크리스테바, 온갖 페미니즘 조류까지 ‘몸’에 얽힌 가히 모든 것을 풀어놓고 분석했다. 초장엔 미국에서는 첨예한 논쟁 중 하나인 낙태론도 다뤘다.

여성을 태아의 인큐베이터, 생명유지시스템으로만 보는 태아 생명체 우선론은 올바른가? 그래서 묻는다. 어머니도 인격적 주체인가? 앞으로 펼칠 논쟁들을 대략 정리한 앞장의 서문은 다소 난해하다. 아차 하면 논쟁의 길가에서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본문부터는 풍부한 사례가 잃은 정신을 돌아오게 할 지 모른다.

조은미 기자coo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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