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 송원근 감독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수상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27년간 용기 있는 목소리 낸
김복동의 투쟁사
“김복동은 뿌리 같은 습성 지닌 인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한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였다. ⓒ엣나인필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한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였다. ⓒ엣나인필름

“저는 서울서 온 피해자, 나이는 90세, 이름은 김복동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감독 송원근)에서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알리고 지지를 얻기 위해 유럽 순회 길에 올랐을 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한 개인의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다. 세상에서 누군가가 숨기려고 하는 한 역사의 모퉁이를 끄집어내는 용기 있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장면이다.

‘김복동’이 (사)여성·문화네트워크(대표 임인옥) 주최, 여성신문사 주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에 선정됐다. 다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김복동 할머니가 평화·인권 운동가로 다시 태어난 27년을 잡아냈다. 그늘진 역사의 피해를 입고도 자신의 목소리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역사를 올바르게 잡으려는 그에게서 여성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의 모습이 겹치는 이유다.

‘김복동’을 연출한 송원근 감독을 21일 만났다. 그는 “대하소설처럼 역사 속을 걸어온 김복동을 차분하게 짚어내고 싶었다”며 “‘한일 위안부 합의’를 중점으로 두고 할머니의 활동과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완성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 정의기억연대와 1인 미디어활동가 미디어몽구(김정환 씨),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협력 작업이 있어 가능했다. 정의기억연대와 미디어몽구가 촬영한 7테라바이트(TB) 분량의 영상이 있었다. 용량만 따지면 2시간 분량의 풀HD 영화 1400여 편 가량을 저장할 수 있는 분량이다. 뉴스타파 스태프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영화 '김복동'의 송원근 감독이 21일 서울 중구 퇴계로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기자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의 송원근 감독은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수상 상금 500만원을 정의기억연대에 기부할 계획이다. ⓒ곽성경 여성신문 기자

여든이 넘은 김 할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기수요시위를 나갔다. 미국과 독일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일본의 사죄를 촉구했다. 보통의 사명감이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세상과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그는 강인한 나무뿌리 같은 존재였다.

지난 8월 개봉한 영화는 지금까지 8만 5000여명의 관객이 찾았다. 송 감독은 아쉽다고 했다.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걸어온 길이 명확하게 널리널리 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은 ‘김복동이’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으로만 소비하더라고요.”

송 감독이 그래서 김 할머니의 투쟁이 대단하다고 느낀 이유다. “할머니는 수십 년 동안 들풀처럼 흘러가서, 환영 받지 못한 곳에서 사셨잖아요. 그곳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고백하면서 이겨내려고 하신 거죠.”

영화의 중요한 지점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이다. 피해자 할머니들과의 상의 없이 정부가 10억엔(약 100억 원)의 위로금을 받아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한다는 내용의 합의다. 일본 아베는 직접 사과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분노와 설움은 터져 나왔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씨앗이 됐다.

“할머니와 젊은 세대 간의 교감이 맺어진 계기가 됐어요.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일부는 일본 대사관에 진입하려다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었죠. 김 할머니는 그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했었어요. 잡혀가는 건 내가 당해야 한다면서요.”

영화 '김복동'의 송원근 감독(왼쪽)과 윤석민 편집.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영화 '김복동'의 송원근 감독(왼쪽)과 편집팀의 윤석민 씨.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송 감독에게 최근 한 일본 패션 브랜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조롱하는 듯한 광고를 내보낸 것에 대해 물었다. 해당 광고에 등장하는 한 할머니가 “80년이 더 된 일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대답한다. 실제로 80년 전인 1939년은 일제가 ‘국민 징용령’을 내려 조선인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던 시기와 일치한다.

“일본은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거죠. 결국 일본 내에서의 교육의 부재가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알리지 않으니 모르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스며들게 되는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계속해서 알리는 수밖에 없어요. 차가운 지성이 담긴 다큐멘터리나 생겨나서 마음을 깊이 새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송 감독은 영화 개봉 후 60여 차례의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했다. 개봉한 지 2개월이 넘었지만 아직도 여러 공동체 상영 요청이 온다고 했다. 벨기와 일본, 영국에서도 영화 상영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고 여기 저기 강하게 흩어져 스며들고 뿌리 같은 습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김복동이라는 이름이 존재했었다는 걸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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