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장난감 수집가 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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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이 아저씨, 정말 이상하다. 척 봐도 이상하지만, 척 보기 전부터 이상했다. 행복한 가정 꾸미기 운동본부라는 이름 아래 ‘매월 18일은 바람 피우는 날’이란 포스터인 척 하는 황당한 만화를 만든 게 이 아저씨다. 그 포스터엔 “여보 술 먹고 늦게 들어오세요.”말 풍선이 달린 바람 피우는 여자와 “오케이… 걱정 말라구!”말 풍선이 달린 바람 피우는 남자 그림이 귀엽게 붙어있다. 그리고 외치는 구호. “너도 나도 동참하여 선진 가정 건설하자. 미친 여자 신고전화 국번 없이 1818”거기다 최근 영화 <몽정기>, LG전선의 전기 찌릿찌릿 통하는 광고까지. 아무튼 이런 엽기발랄 황당무계 유치찬란뽕짝인 아저씨 현태준을 만나,‘아저씨 외계인 맞지?’하고 물어보는 대신, 생글생글 웃으며 조용히 물었다. 망고 주스 좋아하세요?

“2000년인가? 그때 책 낼 때 처음 만화를 그린 거예요. 뽈랄라 대행진요.”

맞다. 이 아저씨 만화가다. 역시. (가장 외계인 분포도 높은 직종이 만화가다) 책도 냈다. 것도 많이. 것도 만화와 글이 요상하게 뒹구는 요상한 책이다. 딱 아저씨 분위기다. 포르노와 랄랄라 말의 짬뽕이라는 <뽈랄라 대행진>(안그라픽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담긴 의성어가 연상되는 <뿌지직 행진곡>(문학과지성사), 그리고 이 아저씨 인생의 꿈과 야망이 담긴

<아저씨의 장난감日記>(시지락) 헉헉. 고 짧은 새 많이도 내셨네. 그런데,

“도대체… (할 말 잃음. 발 디딜 틈은커녕 숨 쉬기도 버거운 온갖 구닥다리 장난감과 만화책과 만화잡지와 온갖 것들로 한 가득인 작업실을 휘휘 둘러보다가) 언제부터 이리 모으기 시작하신 거예요?”

“98년부터 시작했어요. 그 전에도 하긴 했는데… 본격적으로 한 건요.”

그런데 정말 징하게도 많네. 어떡하다 이런 짓을 하게 되셨어요?

“97년도에 작업실 옆에 할아버지가 하는 오래된 문방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만둔다고 어느 날 나더러 자기 문방구를 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때 20만원어치나 샀어요. 그리고 98년인가. 일을 접고, 미국하고 캐나다에 석 달쯤 여행을 갔어요. 장난감이야 그 전부터 좋아했는데, 거기 골동품 시장에 장난감이 정말 많더라구요. 우리나라도 전엔 많았는데 지금은 다 어디 갔는지 없잖아요. 그때 찾아보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행 갔다와서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찾아다니면 다닐수록 옛날 기억이 나고 신기한 거예요.”

그런데 아저씨 그 전엔 뭐했어? 듣자니, <신식공작실>인가? 뭐 그런 요상한 공작을 꾸미는 짓을 하고 살았다면서? 당신, 공작원이었어?

“주로 집사람이 만들었어요. 저는 팸플릿을 만들어 돈 벌구. 그런데 자꾸 재미 없더라구요.”

맞다. 거기서 특이하고 재미난 물건이 많이는 아니고 조금씩 나왔다. 그런데 왜 이렇게 구닥다리 장난감에 집착하시는 거지?

“지금 해야해요. 지금 안 하면 못 해요. 요즘 불황이라서 문방구들이 다 문을 닫고 있어서요. 장난감 재고가 거의 없어지거든요. 요즘은 애들이 컴퓨터게임 하느라 장난감도 안 사서, 큰 데 말고는 다 문 닫았거든요. 아직도 더 많이 모아야 해요.”

그런데 이걸 다 뭘 하시려고? 부둥켜안고 에헤라디야 과거를 떠올리며 혼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실 건 아니신 거 같은데?

“전시장 같은 거 하나 만들려구요.”

아니, 누가 그런 거 만든대요?

“잘 꼬셔봐야지요. 하하하.”

이 아저씨, 이걸 10년 구상이라 했다. 일단 열심히 모아볼 생각. 자기 아니면, 이것들 다 없어진다나? 그리고 지금은 들어오는 대로 열심히 만화 그리고, 또 책 내고, 또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녀야 한다. 그런데 아내분께서 뭐라 안 하시나요? 그런데… 지금 네 살배기 아이를 돌보느라 여념없는 마나님께서는 사실 과거 <신식공작실> 파트너였다. 그가 열심히 돈 되는 일을 하는 동안, 돈은 안 되지만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업들을 한 장본인. 그리고 그가 일을 때려치우고, (돈 안 되는) 여행하고 뭔가 모으고 자기 작업의 세계로 훌쩍 떠날 즈음, 마나님은 쌈지 디자인실 실장님을 하셨다. 이렇게 궁합이 찰떡을 넘어 울트라 강력 오공본드일 수가?

“네. 그러고 보면 마누라 잘 만난 거죠. 후후. 저같이 평범하게 작업하지 않고, 괴팍한 사람을 다 이해하고, 내가 일 하는 거 반대 안 하고.”

하긴, 이해가 없다면? 어느 마누라가 구닥다리 장난감 사모은답시고 전국을 떠돌질 않나 돈을 쏟아붓질 않나(벌써 1억이 넘게 들었다나?) 그러는데 눈 제대로 뜨고 있을 마누라가 어디 있겠나? 하나가 일할 때, 하나는 자기 꿈을 키운다라. 이햐.

그런데, 이 아저씨, 꽤 단순하다. 재밌으면 하고 재미없으면 안 한다. 저렇게 얄딱구리한 만화는 도대체 어떻게 구상하는 줄 아나? 그냥 빈둥거린다. 안 떠오르면? “가만히 있어요.”으헉. 할 말 잃었다. 그때 문득 아저씨가 만들었던 또 하나의 포스터를 빙자한 만화가 생각났다.‘거짓말 사범 일제 소탕기간’이란 포스터였다. 신고처는 관할 친지 및 부모형제. 표어는 이랬다. “믿으면 후회한다. 의심하여 속지 말자”

조은미 기자coo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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