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학생들이 싫어요”
[정진경 칼럼] “학생들이 싫어요”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19.10.24 08:06
  • 수정 2019-10-24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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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싫다, 점점 미워진다, 무섭기까지 하다고 비감해 한다는 이야기를 연달아 들었다. 충격이었다. 중,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생들이 너무 변해서 선생 노릇이 힘들다고 한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대놓고 엎드려 자고, 마구 떠들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가 하면 교실을 들락날락거린다. 선생님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고 심한 경우 폭언, 폭행도 한다. 교육의 붕괴다. 나라면 그런 교실에서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득하고, 예전에 좋은 시절에 선생 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이들이 이렇게 변한 것은 순전히 어른 탓이다. 절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입시지옥과 무한경쟁에 그들을 밀어 넣은 것이 어른이다. 밤 열 시 넘어 고등학교 교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더 늦게까지 학원가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보면 저 푸른 청춘을 죄수처럼 살게 만드는 사회, 이렇게 조금의 자유시간도 주지 않는 사회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이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적대적 반항장애, 불안증,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틱장애, 섭식장애 등으로 병원치료를 받는 아이가 많아졌고, 힘든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더 많다. 소위 명문대에서도 절반 가까운 학생이 우울증을 보인다. 도저히 견디기 어려우면 자해나 자살을 시도한다.

나는 선생 노릇 하는 게 좋았다. 학생들과 더불어 웃고 울며 지냈다. 오래전 한 학생이 내가 좀 무섭다고 말해 놀란 적이 있다. 높은 수준을 기대하고 원칙을 지키라고 엄하게 요구해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격의 없는 선생이라고 자부했지만, 학생이 무섭다는 데야 인정할 수밖에. 한데, 진짜로 무서웠으면 내게 그런 소리를 술술 했겠나? 하여튼 나를 존중하고 무서워해 준 학생들이 이제는 고맙다. 

선생님은 수업을 통솔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칠판 앞에서 혼자 시간 채우고 나가야 한다면, 소외감이 극심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해도 그런 상황에서 수업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불행해진 선생님들이 심리치료를 받고, 조기 은퇴를 고려하거나 실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교육현장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구해내야 하지 않겠나. 아이의 정신건강을 최우선에 두고, 부모가 성적에 대한 집착과 탈락의 두려움을 내려놓고 사회의 압력에 맞서 같이 싸워주면 어떨까. 아이의 행복을 가장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부모니까. 끝없는 경쟁의 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동의해준 용감한 부모들이 내 주변에 몇 있다. 아이들은 남과 다른 길을 개척하는 어려움을 좀 겪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자율성과 책임감은 증가하고 우울증과 공황장애의 위험은 내려갈 것이다. 나이가 삼사십이 되어서도 부모 탓을 하며 내 인생 책임지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이라는 이 난제에 단 하나의 뾰족한 답이 있을 리 없다. 우선은 아이들을 위한 심리서비스 체계가 시급하고, 장기적으로는 학벌 중심 사회를 바꿔나가야 한다. 이력서에 학력을 기재하지 않고 업무에 필요한 능력 위주로 채용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직업 간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사회보장을 확대해나가는 정책도 필요하다. 그런 사회에서는 학벌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명문대 입학을 위한 경쟁의 외길에서 병드는 아이들과 그 옆에서 무너지는 선생님들을 보며,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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