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82년생 김지영’
평범한 여성의 일상 속에서
그려지는 가부장제·성차별
한발 짝 나가는 지영의 모습
원작 소설과 대비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정유미)는 반복되는 지친 삶에 항상 피곤한 표정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정유미)는 반복되는 지친 삶에 항상 피곤한 표정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따뜻했던 공기가 차가워지는 걸 모두가 인식하진 못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느끼는 온도 차는 다르다. 차가운 공기를 느끼는 건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뿐이다. 23일 개봉하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에서 주인공 김지영(정유미)이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순간의 스크린은 냉혹하다. 한국 여성의 삶을 포착해 낸 이 영화가 때로는 공포물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82년에 태어난 지영은 한 남자의 아내이자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기만 하다. 때로는 가슴이 답답하다. 지금보다 좀 더 생기가 넘쳤던 과거의 한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김지영은 낯선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100만 부 넘게 팔린 조남주 작가의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인 영화다. 소설이 한국 사회에서 차별 속에 성장한 김지영의 삶을 좀 더 차가운 시선과 통계 자료 등을 바탕으로 쓰인 것에 반해 영화는 소설보다는 그래도 따뜻한 톤을 유지하려고 힘쓴다. 항상 어딘가 지쳐 보이는 지영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건 남편 대현(공유)와 지영의 엄마 미숙(김미경) 등 가족과 있을 때 그나마 위로를 받을 때다. “지영이 자기 생각을 말함으로써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라는 감독의 말처럼 소설 속보다 조금 더 주체적인 모습이 그려진다. 지영이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에서 사회의 단면을 적절하게 뽑아낸 것이 녹였다는 게 이 영화의 강점이다. 유모차를 끌고 나와 커피를 마시는 지영이 한 무리의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결혼과 출산 후 회사 경력이 끊기고, 아들을 우대하는 지영 아버지의 모습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性)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겪은 그야말로 평범한 일상이다. 이 영화가 어떤 여성의 입장만을 대변하기 위해 그려진 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엄마와 아빠, 딸과 아들, 여동생과 남동생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지금 이야기다. 원작 소설이 나온 지 약 3년이 지난 지금, 소설 속의 한국 사회는 더 나아졌는지 차분히 곱씹어보게 된다.

영화 속 지영의 이야기가 더욱 공감을 사는 건 정유미의 연기 덕택일 것이다. 그늘진 얼굴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여러 번 포기해야 하는 순간의 감정을 차분하게 때로는 먹먹하게 그려냈다. 오히려 지영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싸주지 못한 가족들이 지영의 옆에서 슬픈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이 먹먹하다. 옆에서 지영을 걱정하는 대현을 연기하는 공유의 모습에선 수많은 ‘지영이들’ 옆에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장 격렬한 감정을 쏟아내는 건 딸의 모습을 보는 미숙 역의 김미경이다. 차별을 받고도 그 세상을 바꾸지 못한 채 딸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은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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