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가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부침의 세월 동안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여성운동을 이끌어 온 여협은 여성의 권익신장 및 지위향상에 관한 법과 제도를 구현해 왔다. 10회에 걸쳐 지난 60년 여협의 의미있는 여성운동의 역사를 돌아보고, 향후 60년을 향해 내딛게 될 여성운동의 바람직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범여성 가족법개정촉진회(가칭) 결성대회 사진 1973년 6월 28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범여성 가족법개정촉진회(가칭) 결성대회 사진 1973년 6월 28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가족법 개정운동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와 회원단체들 그리고 다수의 여성단체들의 협력으로 전개되었다. 여협은 1964년 여성문제상담실을 개설하고 여성의 불평등한 제도, 관념을 철폐하기 위한 여성운동을 펼쳤다. 1970년 제8회 여협 전국여성대회에서 남자 본위의 현행 가족제도는 남아선호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므로 가족법상의 남녀차별을 폐지하라는 건의문을 채택하고 가족법 개정운동을 전면적으로 개시했다.

1973년 이숙종 여협 회장은 67개 여성단체들과 연합하여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촉진회 회장 이숙종)’를 결성하고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10대 개정요강을 발표했다. 그 개정요강이 다수 반영되어 1977년 12월 가족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 개정내용은 부(父)만이 행사했던 친권을 부(父)와 모(母)가 공동으로 행사하게 하고, 남녀차별이 있었던 상속분을 동일하게 하는 등의 내용이다(미혼자녀의 경우만 해당). 하지만 호주제를 비롯한 일부 가족법 조항에 여성에게 부당한 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70년대 가족법 개정운동은 여성계의 연대활동과 국회 및 정부의 협조로 이뤄졌고, 국제적으로는 여성지위 향상을 위해 UN이 1975년~1985년 10년간을 ‘세계여성의 해’로 선포함으로써 이에 힘입어 이 10년 동안 한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남녀차별적 가족법 규정이 대폭 개정되는 등 전반적으로 법적 발전이 있었다.

가족법 개정을 위해 국회 공청회에 참석한 본회 대표들. 1977년 11월 7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가족법 개정을 위해 국회 공청회에 참석한 본회 대표들. 1977년 11월 7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가족법 개정운동의 핵심내용은 가족법상의 남녀차별 해소, 즉 아들보다 딸을 우선하여 상속시키는 불합리한 호주상속제 개정, 부모의 동등한 친권 행사, 동성동본불혼 원칙(성과 본이 같으면 촌수가 멀더라도 무조건 혼인금지) 폐지, 이혼시 재산분할청구권 인정, 남녀평등한 재산상속분 인정 등이었다. 가족법 개정운동의 주체는 집단적·조직적 연대활동의 전략 차원에서 ‘여성단체들 간의 연대’를 통해 구성되었다. 처음 가족법 개정운동은 여협과 회원단체인 가정법률상담소의 역할이 컸다. 1957년 12월 친족상속편을 포함한 신민법(1960년 시행)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성단체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못했다. 195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가족법 개정운동은 여협이 창립(1959년)되기 전에 이뤄졌고, 이때 참여한 여성단체는 대한YWCA연합회, 대한부인회, 대한여자청년회, 대한여자국민당, 대한조산협회, 여성문제연구회, 여자선교단 등 7개 여성단체였다. 이후 여학사협회를 포함한 다른 여성단체들까지 연대하여 이를 관철하기 위한 가족법 초안 심의요강에 대한 의견 제출, 가족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강연과 좌담회 개최, 민의원 의장과 국회의원 전원 및 대통령에게 청원서 제출과 시위 등 다각도의 개정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여성운동의 힘은 이후 여협의 회원단체가 된 이들 여성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1959년 여협을 창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가족법 개정 추진을 위한 여성 단체장 회의 1984년 7월 18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가족법 개정 추진을 위한 여성 단체장 회의 1984년 7월 18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여성단체들과 법학자들의 노력으로, 1980년 개정헌법에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규정(제34조)이 신설되었다. 여협 손인실 회장과 여성단체장들을 비롯하여 당시 보건복지부 김정례 장관의 협력으로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이 설립되었다. 그해 5월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서명(세계여성의 해 선포의 실천사항)과 12월 국무총리 산하 ‘여성정책심의위원회(여성부 전신)’설치 등 여성관련 정책과 입법이 구체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여협은 1983년 제20회 여협 전국여성대회(당시 손인실 회장)에서 채택된 ‘가족법 개정 완결’결의문을 정부에 건의했으며, 1984년 여성단체 대표들을 결집해 ‘가족법 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를 발족했다. 이후 여협은 가족법개정 촉진대회 개최, 가족법개정 촉구 성명서 발표, ‘개헌과 여성-양대 정당에 묻는다’공청회 개최, 가족법개정 촉구를 위한 건의문 발송 등 끊임없이 가족법 개정운동을 전개했다. 마침내 1989년 12월 19일 대폭적인 가족법 개정이 이뤄졌다. 개정가족법에는 친족범위의 남녀평등(8촌이내의 부계혈족과 4촌이내 모계혈족으로 나누던 것을 ‘8촌이내 혈족’으로 단일화하는 등)과 이혼시 재산분할청구권이 반영되었다. 그 사이 여협 등 여성계의 많은 노력으로, 1987년 제9차 개정헌법에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대한 ‘국가의 보장의무’조항이 신설되었다(제36조 제1항).

2003년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개정(안) 국회의원 입법 발의 및 272인 발족 기자회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2003년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개정(안) 국회의원 입법 발의 및 272인 발족 기자회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여협은 가족법에 여전히 남아있던 호주제 폐지를 위해 1990년 개정가족법 해설책자 발간과 1993년 가족법개정 국회청원 등 계속적인 운동을 벌였다. 2000년에 여협은 다른 여성단체들과 함께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탈호주제 대안사회운동본부 사이트 운영 및 아이디어 공모, 거리 캠페인 등 여협 자체 활동과 연대활동을 펼쳤다. 여협은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의 호주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부분 위헌제청 등)을 이끄는 데 중심적 역할을 했으며, 그해 3월 31일 호주제가 가족법에서 폐지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여협은 여성운동의 주된 맥을 이어온 가족법 개정운동을 통해 호주제를 청산하고 부부평등 등 민주적 가족관계의 토대를 놓았다. 이제 여협은 실제적인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가족법 개정운동을 펼치면서 향후 가족법개정 과제인 자녀양육비의 공적 지원, ‘혼인 중’재산분할청구권 신설, 1/2의 배우자 재산상속분 보장 등을 위해 경주할 것이며, 더 나아가 남북교류를 통한 ‘통일가족법’제정운동을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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