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린 범죄에 분노한 여성들
강남역으로 모여 포스트잇 추모
'강남역10번출구', '불꽃페미액션' 등
자발적 여성 연대, 조직화 되기도

시민들이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발생한 강남역 10번 출구 앞을 찾아 피해 여성을 추모하고 있다. ⓒ여성신문
시민들이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발생한 강남역 10번 출구 앞을 찾아 피해 여성을 추모하고 있다. ⓒ여성신문

 2016년 5월 17일 새벽 1시 강남역 부근 빌딩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여성을 기다렸다. 7명의 남성이 지나간 뒤 처음 들어온 여성을 살해했고 경찰 조사에서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여성들은 이처럼 여성을 노린 사건인 ‘페미사이드’(여성살해 Female·homicide의 결합어)에 분노했다. 경찰과 언론이 ‘묻지마 살인사건’이라고 정의한 데 항의했다. ‘묻지마’라는 것은 여성을 노렸다는 점을 부정하는 명명이라는 점 때문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할 수 있다는 여성혐오를 비판하기 위해 함께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추모의 꽃다발과 포스트잇으로 뒤덮였다. 매번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건 발생 3년 동안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여 추모제를 열었다. 이처럼 강남역 10번출구는 여성혐오범죄를 반대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집단적 추모행사를 하고 성폭력 필리버스터를 감행하는 이유는 도시의 일상적 공간이 여성에게는 위험과 불안의 장임을 알리는 작업이자 공적 공간을 독점해 온 남성 권리에 대한 도전이며 경계를 해체하고 재점유하려는 시도였다. 강남역 사건을 책으로 쓴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책 『누가 여성을 죽이는가』에서 ‘강남역 10번 출구’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배경에 ‘공간의 특수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곳이 “젊은 여성 상당수가 ‘어제도 갔던, 내일도 갈 그 공간’, ‘늘 걷던 그 거리’인 강남역 인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건 발생 직후 ‘강남역10번출구’, ‘불꽃페미액션’ 등 여성들의 연대 움직임이 생겨났다. 페미니스트 그룹 ‘불꽃페미액션’은 당시 수사기관에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명명한데 저항하기 위해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여성혐오가 죽였다’라는 피켓을 들고 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가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특출난 사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살해사건이 수없이 많았지만 이 사건이 커질 수 있었던 것은 메갈리아 등장 이후 여성들이 이 사건을 공론화하고 추모하기 위해 포스트잇을 붙이며 캠페인을 했기 때문에 커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다른 사건에 비해) 주목받게 된 것도 여성들이 직접 만들어낸 계기라고 할 수 있다”며 “이에 영향을 받아 페미니즘에 눈 뜬 여성들도 생겨나고 이 사건을 매개로 해서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이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활동가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후 한국 사회의 젊은 여성들이 본인을 페미니스트로서 자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은 명백히 여성이라서 살해당한 것”이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성차별은 더 이상 없다’, ‘평등이 성취됐다’는 말들은 거짓임을 알게 해줬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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