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2019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안은미 무용가
약자를 위로하고 세상을 그린다
30년 간 인간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춤을 펼쳐

안은미 안무가.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은미 무용가가 자신의 데뷔 30주년 회고전 ‘안은미래'전이 열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쉴 틈 없이 무대를 휘저은 그는 모든 사람은 약자라는 메시지를 춤에 담아 세상의 공감을 샀다. ⓒ곽성경 기자

 

“평생 무대에 올라본 일이 없는 할머니가 무대에서 주춤합니다. 발걸음을 어떻게 떼어야 할지 멈칫, 해요. 그 짧은 움직임 안에 한국사 100년이 다 담겨있습니다. 여성들의 역사가 그 안에 담겨있습니다.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왈칵 납니다. 저는 그걸 끌어낼 뿐이죠.”

춤으로 사회의 약자를 위로하고 삶의 다양한 빛깔을 몸으로 노래한다. 관광버스 막춤이라 낮춰보는 시골 할머니들의 춤을 파리의 무대에 올렸다. 브라질 공연도 했다. 요즘은 북한 춤에 주목하고 있다. 극도로 양식화된 북한 춤을 통해 새롭게 우리를 본다.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안은미(56)씨 이야기다.

안은미씨가 (사)여성·문화네트워크 주최, 여성신문사 주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2019 양성평등문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988년 ‘안은미컴퍼니’를 창단한 뒤 지난 31년간 100여 편이 넘는 춤을 만들었다. 숱한 작품을 꿰뚫는 주제는 여성의 삶이다. 바리데기 설화를 모티브로 한 ‘바리’ 시리즈와 ‘新춘향’이 유럽 등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았다. ‘新춘향’은 2006년 유럽 4개국에서 개최된 ‘월드뮤직 시어터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국내 무용계 최초로 유럽 프로덕션과 공동 제작한 월드 투어다.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사심 없는 땐스’,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 3부작 시리즈를 통해 평범한 할머니, 10대 청소년, 책임감에 짓눌린 아저씨를 표현했다. ‘대심(大心) 땐쓰’를 통해서는 저신장 장애인과 춤을 췄다. 안씨는 지난해 한국인으로는 처음 프랑스 파리 시립극장 '테아트르 드라빌' 상주 예술가로 선정됐다.

'빡빡머리'에 물방울무늬의 분홍색 옷과 입고 나타난 그는 중간중간 호탕한 웃음까지 더했다. 진지하게, 때로는 거대한 손짓을 하며 춤과 자신의 삶을 풀어놓았다.

“우리 집에는 남녀 차별이 없었어요. 하지만 제 주변이나 제 엄마는 여성으로서 구조적으로 억압 받던 세대예요. 저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머리를 민 이유는 예쁜 여자이고 싶지 않았고 어떤 남자의 부인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태도 때문에 어려서부터 유명해졌어요. 늘 이상한 아이로 말이죠. 제가 대학교에서 처음 들었던 강의가 여성학이었는데 (듣고 나니) 엄마의 삶이 이해됐어요.”

다섯 살 때 우연히 화관무를 보고 춤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초등학교 때 무용학원을 다녔고, 금란여고에서 무용반에 들어갔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대학교에서 현대 무용을 전공하면서 춤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나갔다.

“우리 모두는 약자예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몸의 구조가 다르잖아요. 그들에게 춤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들의 마이너리티함을 이해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어딘가 '디스에이블'(disable)‘ 즉,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죠. 끊임없이 제가 이야기하는 것들이죠.“

안은미 무용가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은미 무용가가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불균형한 사회에서 모두의 몸도 불균형한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만큼 사람들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안씨의 생각이다. “춤은 쉼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틀을 자꾸 흔들고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끔 흔들어대는 입장에 서 있죠. 춤출 때는 다 똑같아요. 생존하려는 마음도 똑같고 잘 사려는 마음도, 행복해지려는 지수도 똑같죠.” 태어난 것 자체가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력했고, 강해졌다. “어떻게 이겨내는 것인지 스스로 물었어요. 훈련을 해보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가르쳐 드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당신의 근육으로, 당신의 발로 올라서야 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제 춤에 담겨 있는 메시지에요. 위로이지만 강한 메시지가 있는 거죠.”

2017년 ‘쓰리쓰리랑’ 공연이 그랬다. 군대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지닌 이들의 어머니 등 6명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모두 기립박수를 치는데, 크게 못 치는 거예요. 우느라고.” 그는 “춤은 말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며 “말 안 해도 손잡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에너지를 (사람들이) 읽는다”고 춤의 힘을 말한다.

그는 신작 ‘타이거 앤 드래곤스’를 준비 중이다. 한국 사람을 포함해 동아시아 6개국에서 무용수 1명씩 뽑아서 만드는 작품이다. 국내에서 초연하고 내년 7월 해외투어에 나선다.

“사람들이 우울한 시대에 살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대안이 없잖아요. 대안이 없는 건 불안하다는 거예요. 역동성이 없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걸 개발해야 돼요. 새로운 움직임이 나와야 해요.”

안씨는 최근 “돈을 크게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서다. “빌 게이츠가 인간을 구원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더라고요. 개발도상국에 깨끗한 화장실을 개발하고 소아마비 퇴치를 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안전하게 만들더라고요. 돈은 그렇게 쓰여야 해요. 돈이 있으면 그렇게 해주고 싶네요!(웃음)” 춤으로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더욱 커져만 가는 간극을 잇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안은미 무용가 약력

△1964년 경북 영주 출생 △이화여대 무용학과, 동대학원 현대무용학 석사, 뉴욕대 대학원 티시예술대 무용학 △1988년~‘안은미컴퍼니’ 예술감독 △2000년 12월~2004년 7월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2007년 11월~2009년 5월 하이 서울 페스티벌 봄축제 예술감독 △2011년 12월~2012년 6월 부산국제무용제 국제 프로그래머 △2002년 뉴욕문화재단 안무가상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제1회 국제상 △2015년 제8회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올해의 예술가상 △2016년 한불문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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