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가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부침의 세월 동안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여성운동을 이끌어 온 여협은 여성의 권익신장 및 지위향상에 관한 법과 제도를 구현해 왔다. 10회에 걸쳐 지난 60년 여협의 의미있는 여성운동의 역사를 돌아보고, 향후 60년을 향해 내딛게 될 여성운동의 바람직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정부여성정책기구 개편에 관한 범 여성 공청회. 1998년 1월 30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의 후반 30년의 역사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다. 여협 창립연도인 1959년부터 1989년까지가 초반 30년이라면, 1990년부터 2019년까지는 후반 30년이다. 이 시기에는 이연숙, 최영희, 은방희, 김화중, 김정숙, 최금숙 회장이 여협을 이끌었다.

여협의 후반 30년 주요성과는 여성할당제와 군가산제 폐지, 여성부 설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심에 최영희 회장이 있다. 특히 여성할당제는 최회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협조를 받아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김정숙 회장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서 이뤄졌다. 최회장은 1997년 언론중재위원회에 여성위원 30% 할당 촉구와, 1998년 정부에 ‘여성부 신설 및 정부위원회 여성할당, 여성고용 불안정 해소에 관한 건의’를 했으며, ‘여성정책기구 개편 및 정치구조개혁을 위한 범여성공청회와 6·4지방선거 여성할당 촉구집회를 열었다. 군가산제 폐지와 관련해서는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등과 공동으로 군가산점제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여 1999년 위헌결정을 얻어냈다.

 

1994년 국회내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된 것은 그해 취임한 이연숙 회장의 신설 청원에 따른 것이었다. 이회장은 1994년 ‘할당제 도입을 위한 여성연대’를 구성, 여연의 이미경 상임대표와 함께 공동대표로서 여성할당제를 건의했으며, ‘95년 지방선거참여 여성후보자 격려회’를 열었다. 또한 가족법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 발족,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청원 등의 활동을 했다. 특히 이회장은 NGO 한국위원회 공동대표로 선출되어 1995년 ‘북경 세계여성회의’에 한국대표단 일원으로서 여협 임원 13명(최영희 회장 및 여협 국제관계위원이었던 강경화 현 외교부장관 등)과 함께 참석했다. 이후 1997년 정무 제2장관, 2000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최영희 회장
은방희 회장

2000년대 들어 여협은 여성의 노동권보장에 중점을 두었다. 2000년 당시 은방희 회장은 기업의 여성직원 부당해고 철회 요청, 고용평등상담실 개소, 비정규직 노동자 기본권보장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여성관련 노동법개정 청원서 제출 등의 활동을 했다. 한편 정당법에 비례대표 여성 30%할당 명시와 제16대 총선에 여성후보자 30%할당을 촉구했다. 특히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발족해 2001년 ‘호주제 위헌판결’촉구 캠페인과 2002년 ‘호주제 폐지 272’발족 등을 통해 가족법개정운동을 이어나갔고, 마침내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아울러 성매매근절대책 정책토론회, 모성보호관련법 개정 촉구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김화중회장

2006년과 2008년 사이 여협은 정부정책 바로알기, 출산·건강가정운동, 안전운동, 여성정책 바로알고 제안하기 등 4대 중점사업 추진했다. 이는 복지부장관을 역임한 김화중 회장 때에 이뤄진 일로, 김회장은 저출산·고령화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서에 서명하는 등 건강가정운동을 펼쳤다. 2006년 ‘북한수재민돕기 쌀 모금운동’을 통해 북한에 쌀을 보냈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여성대표단장으로 참석했으며, 금강산관광사업 9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김정숙 회장

여협은 환경운동에도 관심을 가져 2009년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실현 대토론회 개최, “WE Green 네트워크(여성·시민사회가 함께 녹색생활을 실천해 나간다는 의미)”결성 등 녹색생활실천 운동을 추진했다. 이는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정숙 회장 때의 활동이다. 김회장은 2009년 비정규직관련 법안표류에 대한 입장 성명서 발표, 2010년 청렴사회 실현과 여성의 역할 대토론회 및 고령친화도시 조성관련 포럼 등을 개최했다. 특히 ‘2010지방선거 남녀동수’연대를 출범시켜 여성의 정치세력화운동을 본격화했다. 2011년과 2014년 동안 여러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청소년보호법 개정안 즉각 통과, 군필자 공무원채용 할당제 의견, 국회의원 지역구 공천과 여성30% 실천 강력 촉구, 탈북자 강제북송 즉각 중단, 6.4 지방선거, 지역구 여성공천 30% 보장 등에 관한 성명서였다. 2014년 여성발전기본법 전부개정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 ‘양성평등기본법’탄생에 기여했다. 한편 김회장은 활동의 폭을 넓혀 세계여성단체와의 교류에 주력했다. 여협에서 매년 3.8세계여성대회 기념식 실시와, UN여성지위위원회에 NGO대표로 참석하여 여협 세션을 여는 등 국제여성연대에 힘썼다. 특히 2012년 제33차 세계여성단체협의회(ICW)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했고, 2014년 제21차 아시아·태평양 여성단체연합 총회도 개최했다. 2015년 이후 ICW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여협은 가장 큰 여성이슈 중 여성폭력과 관련하여, 2018년 Me too#운동에 부응해 ‘전국미투지원본부’를 발족했고, 여협내 여성가족정책연구원을 설치해 ‘권력형 성폭력과 비동의간음죄’도입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최금숙 회장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시절부터 여성폭력관련 정책연구를 해왔던 터라 발 빠르게 대응했다. 최회장은 2015년 ‘간통죄 폐지에 따른 후속대책 논의 필요’성명서 발표, 여성대표성 확대관련 법개정 포럼과 미혼모 편견 없애기 대토론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한편 각 정당 대표에게 ‘지역구 여성공천 30% 의무화 법개정 촉구 1만명 서명’을 전달했다. 2016년과 2017년 중·장년층 여성인력활성화 심포지엄과, 2017년 ‘여성(女聲), 청렴을 청(靑)하게!’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여협은 여성운동이 국가여성정책으로 이어지는 제도화에 기여해왔다. 여협의 후반 30년의 역사는 여성운동의 전성기이자 여성연대의 활성화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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