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적 견제·시민 통제 받는
검찰 조직으로 거듭나야

 

조국 법무부 장관과 검찰을 두고 연일 뜨겁다. 20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장에는 ‘민생과 정책’은 사라지고 ‘조국’만 남았다. 국정 운영 전반을 조사해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국정감사가 조국이슈에 빠져 이를 잊었다. 어렵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상정된 공수처 설립 및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들도 상임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으나 대화와 소통의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무능한 정치가 언제나처럼 또 다시 재현되고 있다.

거리와 광장도 예외가 아니다.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을 외치며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8번째 시민촛불집회가 열렸고, 광화문광장에서는 반대로 ‘조국 법무부장관 규탄 및 사퇴와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보수단체와 자유한국당의 집회가 열렸다. 이를 두고 국론분열이니 세몰이 집회경쟁이니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의정치가 국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할 경우 국민들은 항상 직접 의사표시를 해왔다.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무능한 대의정치가 직접민주주의를 다시 호출했다.

조 장관의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나온 의혹들은 ‘진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했다. 기득권화된 진보의 삶이 그들이 그렇게 비판했던 우파 기득권세력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에 의해 악화된 사회경제적 불평등 위에 안주한 진보정치의 현주소였다. 이젠 좌·우가 아닌 상·하의 문제다. 보다 평등하고 보다 공정하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에게 던져진 과제다.

그러나 현재의 ‘조국 정국’의 핵심은 검찰개혁이다. 검찰개혁을 무력화하려는 세력에 대항하여 검찰개혁을 완수하려는 정부와 국민들의 저항이 본질이다. 공익의 옹호자로서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도 칠 수 있는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 상황은 견제 받지 않은 검찰조직의 정치적 중립은 조직이기주의를 위장하는 매우 위험한 수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검찰개혁은 ‘국민의 선출에 의해 구성된 정부와 의회를 통한 국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품고 출발했던 87년 체제의 마지막 개혁과제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검찰은 기소독점권이라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졌으나 그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포함해 검·경 수사권 분리와 같은 조직간 견제장치도 없고 검사장 선출이나 사소권(私訴權)과 같은 시민적 통제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도 없다. 제도적 견제도 시민적 통제도 받지 않는 검찰, 이 상황에서 시민과 피해자는 오로지 목숨을 걸고 죽을 때까지 싸우거나 죽음으로서 저항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여성피해자들이 죽어갔고 침묵을 강요당해왔다. 서지현 검사의 성희롱 폭로로 촉발된 미투운동은 지속적으로 검·경 개혁을 요구해왔다. ‘미투운동과 함께하는시민행동’은 지난 7월부터 ‘다시 쓰는 정의, 검찰개혁 여자들이 한다’는 슬로건 하에 매주 금요일 광화문에서 페미시국 광장을 열었다. 고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 웹하드 카르텔 등 사건의 본질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검·경의 부정의와 나아가 정부의 의지 없음에 대해 규탄했다.

‘버닝썬, 핵심은 강간문화카르텔이다. 공조세력 검경을 갈아엎자’ 등 10회에 걸친 여성들의 분노서린 외침은 불행하게도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다. 법의 이름으로 가해자들에게 면죄부가 남발되고 있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직선제를 필두로 군의 정치적 중립, 평화적 정권교체, 지방자치, 선거제도개혁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장해왔고, 그 핵심은 견제와 균형의 제도화였다. 검찰도 예외가 아니다. 제도적 견제와 시민적 통제를 받는 조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어쩌면 제2의 민주화로의 항해를 위한 87년 체제의 마지막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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