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가을은 결혼식의 계절. 평소 주례를 잘 맡지 않는 한 선생님이 어느 주례 부탁에 선선히 응했다. 그 신랑이 어렸을 때 가까이 살았는데, 아이의 착한 성품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동생이 어려운 병으로 입원을 거듭하고 오래 앓을 때, 그 아이는 자기도 어리건만 무엇이든 양보하고 동생을 잘 보살폈다. 선생님은 신랑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해서 착한 성품을 칭찬하고, 서로 노력해서 잘 살라는 당부로 주례사를 마쳤다. 모름지기 명주례사는 짧아야 한다며 짧게 했다. 신랑의 가족은 옛날 함께 극복한 어려움을 생각하며 칭찬에 고마워했다. 

하객들이 나갈 때 신부 어머니가 다가와 인사를 하더니, “그런데 신랑이 자랑거리가 많은데 말씀을 다 안 해 주셔서 유감”이라고 했다. “칭찬할 게 착하다는 것 말고는 없나보다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겠어요”라고 덧붙였다. 일류대를 나왔고 유명회사에 다닌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선생님은 주례사로 이력서 낭독보다 아름다운 덕담을 준비하느라 고심했는데.

어떤 주례사는 신랑신부의 화려한 이력을 늘어놓으며 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과시해준다. 하객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은 주최 측의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런 자랑은 유치하기도 하거니와, 일부 하객들에게는 배려심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결혼을 상업적 거래로 여겨 획득한 상품의 장점을 늘어놓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나? 그동안 나는 결혼식 주례사를 듣자면 민망한 경우가 적잖았다. 성평등에 위배되는 사례도 허다했다. 요즘에는 주례 없이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진행하는 창의적 결혼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엉뚱한 주례사에 진땀 빼지 않고 자신들의 가치관에 맞는 결혼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과연 착한 성품이 화려한 이력보다 하찮은 것일까? 자식의 배우자에게 가장 원하는 특성이 착하고 따듯하고 배려있는 마음이 아니면 무엇일까? 다양한 성격 특성의 호감도를 살펴본 사회심리학 연구는 ‘따듯함’이 엄청나게 중요한 특성임을 밝혀냈다. 우리는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을 파악해 가까이 지낼까 말까를 결정한다. 이 인상형성 과정에 특별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특성’이 하나 있는데, 바로 ‘따듯하다-차갑다’이다. 다른 여러 성격 특성들과 비교해 볼 때, ‘따듯하다-차갑다’라는 특성은 앞으로 나와의 관계에서 두루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를 중심에 놓고 인상을 형성하게 된다. 따듯한 사람이 똑똑하면 내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차가운 사람이 똑똑하면 오히려 겁나는 일일 수 있다. 차라리 똑똑하지 않은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똑똑함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일류대가, 유명회사가, 출세가 다 무엇이랴. 인생을 좀 오래 살아보니, 사회심리학 아니라도 마음이 따듯한 사람, 착하고 배려있는 사람과 사는 것이 행복이다. 그런 사람은 우리에게 하루에도 수없이 ‘소확행’을 선사한다. 인생살이에 어려움이 닥쳐도 그 덕에 마음 한 편은 늘 포근하게 지낼 수 있다.

“칭찬할 게 착하다는 것 말고는 없느냐”는 말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결혼시장의 가치관이 딱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런 비교와 경쟁의 의식이야말로 행복으로부터 멀어지는 고속도로이기 때문이다. 좋건 싫건 경쟁할 수밖에 없는 무슨 시험도 아니고, 행복하려고 하는 결혼을 남과의 비교에서 시작하는 건 어리석다. 화려한 이력을 좋아한 어머니와 달리, 그 신부만은 신랑의 착한 성품에 반해서 결혼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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