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여성학자 엘렌 식수 주제 국제세미나에서 만난 ‘의외의’ 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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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2일 프랑스 국립도서관 대강당에서 식수의 저작을 주제로 열린 국제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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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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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레이 칼-그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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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

자크 데리다의 가부장성

지나달 22일,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 세계적인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뉴 프렌치 페미니즘의 기수 엘렌 식수를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 강의가 계속된다. 남은 발표자가 2명이나 있다. 예정시간을 지나 발표가 끝났다. 세계적 철학자의 발표를 듣느라 나머지 발표자들은 발언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내막을 본지 파리특파원이 보내왔다.

<편집자 주>

지난 5월 22일부터 사흘 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 대강당에 많은 여성들이 모였다. 우리나라에도 미국에서 공부한 여성학자들을 통해 알려진 뉴 프렌치 페미니즘(New French Feminism)의 기수 가운데 한 사람인 엘렌 식수의 저작을 주제로 하는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는 물론 주변 유럽 나라들과 미국과 캐나다에서까지 많은 여성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엘렌 식수는 얼마전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손으로 쓴 원고들과 작가수첩 등 자신의 저작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두 국립 도서관에 기증했다. 국립 도서관은 빅토르 위고, 프루스트, 사르트르, 시몬느 드 보봐르 등의 관련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소장하면서 연구자들에게 자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이번 국제회의는 식수의 자료들이 이러한 전통 속에 자리잡게 된 것을 기념하여 열린 것이다.

‘발생, 계보, 장르: 엘렌 식수의 저작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세미나에는 엘렌 식수를 포함하여 22명의 작가, 철학자. 문학평론가, 정신분석학자 등이 발표자로 등장하여 사흘 동안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23일에는 연극 공연과 작품 낭독 프로그램도 있었다.

철학자들 모인 자리서 데리다,‘말의 독주’

22일 아침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미테랑이라는 대통령의 이름을 달고 있는 새로 지은 국립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은 마치 거대한 책을 반쯤 펼쳐 세워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네 개의 거대한 유리 탑으로 세느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도서관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유리탑 주변 사방을 둘러 싼 나무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고 그 다음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오르고 내리는 그 길에서 도서관에 들어가서 할 일을 생각하면서 머리 속을 정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겨울에는 세느 강 바람에 얼굴이 시리고 여름에는 햇볕이 따갑다. 9시 조금 넘어 회의장소인 대강당 앞에 도착하니 커피를 비롯한 음료수가 차려져 있고 엘렌 식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곧 이어서 첫 번째 분과 발표가 시작되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철학자 자크 데리다, 이 회의를 조직하였고 파리 8대학에서 엘렌 식수와 함께 여성학과를 운영하고 있는 미레이 칼-그뤼베, 스페인 문학 전문가 미셸 장드로-마살루 이렇게 세 사람이 사회자와 함께 단상에 앉았다.

드디어 데리다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문서의 비밀, 계보학적 발생, 장르, 그리고 천재”라는 제목으로 발언권을 잡은 데리다는 백전노장의 달변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식수의 전 저작을 넘나들며 자신의 해박한 철학을 바탕으로 식수의 문학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전개하였다.

그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글쓰기, 여성적 글쓰기, 자기만의 글쓰기를 통해 읽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천재라는 그의 정의에 따라 식수의 글쓰기를 분석해 나갔다.

예정시간 지나도 “데리다니까…”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의 발표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9시 30분에서 시작해서 12시 30분에 끝나는 아침 발표에 세 사람의 발표자가 있으니까 한 사람이 대략 1시간 정도의 시간을 할애 받은 셈이다. 그런데 거의 두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도 데리다의 발표는 끝날 줄을 모른다.

그런데도 사회자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다. 나머지 두 사람의 여성 발표자도 속으로는 어떤 기분인지 몰라도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데리다의 발표 내용보다는 과연 이 예외적인 토론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2시 30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데리다의 발표는 끝났다. 이 때 사회자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이런 발표를 듣고 난 후 무슨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아침 분과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이 말에 발표자로 데리다와 함께 단상 위에 앉았던 두 여성 발표자들이 아무 말 없이 준비한 원고를 정리하여 단상을 내려온다.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내심 매우 불쾌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세계적인 철학자라고 하고 엘렌 식수와 지적으로 특별한 관계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머지 두 사람의 여성 발표자를 그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세계적 학자 얘기 들었으면 그만일 뿐?

사회자와 두 사람 여성 발표자와 나머지 청중들은 그냥 그렇게 데리다의 일방적인 발언권 독점을 수동적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나는 내 옆에 있는 중년 여성에게 이런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데리다니까”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나서 “레비스트로는 옛날에 6시간을 한 적도 있다”라고 덧붙인다. 세계적인 학자의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아니 아무리 세계적인 철학자라고 해도 그렇지 그런 '시간상의 독재'를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치 단체의 모임도 아니고 학자, 문인들의 모임인데 개인적 지적 카리스마가 그렇게 통할 수 있단 말인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만약에 데리다의 발표가 길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 주최측은 특별 강연으로 처리하여 처음부터 그에게 3시간을 주었어야 했을 것이다.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이렇게 나머지 발표자들을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저녁에 중학교 교사인 프랑스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래서 데리다 이야기를 했더니 "원래 철학자들이 현실 감각이 부족해서 그래"라고 자기 해석을 덧붙인다. 자기 친구들 가운데도 철학 전공자들이 있는데 대부분 현실보다는 관념 속에 산다고 말한다.

나는 결코 그 말로도 데리다의 행위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내가 해석하기에 그것은 세계적인 철학자로서의 권위나 철학자의 현실감 부족이라는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것은 데리다의 여성관이다.

여성들이 주관하고 청중의 90% 이상이 여성들인 모임에 와서 그런 ‘말의 독재’를 했다는 것은 여성에 대한 데리다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해체주의자이고 가부장제도 그의 해체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그의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남성이 세상을 정의하고 여성은 그 정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자기도 모르는 무의식적 상황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남성은 말하는 존재이고 여성은 듣는 존재라는 남성 중심의 무의식적 사고방식의 반영은 아닐까?

무엇을 위한 해체주의인지…

그만큼 가부장제의 뿌리는 깊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자리에 참석한 여성들이 그러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아무런 저항도 보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여성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저 듣는 자세를 취했다.

그렇다면 내가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여성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식수는 크리스테바, 이리가레이와 함께 ‘차이주의적’ 여성이론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닌가?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고 새로운 여성의 정체성을 찾는 작가를 주제로 하는 자리에 와서 여성들 스스로가 어떻게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최근 엘리자베스 바뎅테르(Elisabeth Badinter)는 ‘차이주의적’여성운동의 입장을 비판하는 책을 펴냈다. 바뎅테르는 이 책에서 여성의 특성을 강조하는 차이주의적 입장의 여성운동을 ‘평등주의적’ 입장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책의 제목은 <잘못 들어선 길>이다. 바뎅테르가 데리다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 궁금하다.

장미란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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