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위해 창부는 필요하죠”

매매춘 여성, 속칭 ‘창부’는 남성예술인들의 언어 장난감인가?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발언 때문에 시끄럽다. 문학계간지 <문학수첩>과 가진 좌담 자리에서 언급한 발언 때문이다. 이 장관은 영화를 비유해‘창부’란 표현을 썼다. 또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장관은 창부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단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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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영화라는 것이 (중략) 태생이 그렇습니다. 비유하자면 생일은 있는데 태생이 창부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왜 그러냐면 족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매체는 족보가 없습니다. 물론 아비가 누구인가는 짐작이 가요. 사진도 있고, 연극도 있고, 소설도 있고, 그렇지만 누가 아비인지는 정확히 몰라요. 시장판 태생의 창부의 자식인 셈이지요. (중략)그런 점에서 삶의 진실을 추구하려는 기존의 속성과 이 창부의 속성이 붙어서 태생의 갈등을 끊임없이 증폭시키는 것이 이 영화라는 매체가 발전하는 과정입니다.”

최혜실 : 창부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창부성을 부정하려면 영화를 안 만들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영화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창부성을 인정하는 행위일진데, 창부성을 비판한다면 그 창부성은 어떤 방식으로 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이창동: 그런데 창부가 필요하잖아요. (일동 웃음) 창부가 필요하다는 것이 무언가 하면,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이 필요하다는 거죠. 자기 말로, 또는 자기가 하는 행위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창부죠. (중략) 대중성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어요. 대중성을 어떤 관점에서 이용하느냐가 문제겠지요. 그래서 저는 관객이 원하는 대로, 해달라는 대로 해 주는 거죠. 요구하는 대로 해 줄 수 있잖아요. 그것이 창부의 특징이죠.(하략)”

- <문학수첩> 2003 여름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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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매체도 여성 비하엔 무감각

이 발언에 대해 혹자는 이 장관이 워낙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럴 거라 추정했다. 하지만 농담으로 모든 게 용서되는 게 아니다. 이 장관의 발언에 대해,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의 조진경 사무국장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텍스트를 남성으로 창부를 여성으로 보는 것부터가 일반적 도식을 그대로 쓰는 것 같다.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이 돈이라는 창부를 통해서 드러난다고 하는데, 이 구조가 아주 불평등하다. 전근대적인 상징이다.” 또 그는“단순히 남성을 텍스트로 여성을 돈으로 상징하면서, 인간 욕구 표현은 남성성으로 표현하면서 반면에 무가치하고 소모되고 자본성을 지닌 것은 여성성으로 표현하는 것도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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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을 비하하는 비유나 표현이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진보적인 매체의 대명사격인 한겨레신문에서도 이 비슷한 일은 왕왕 있어왔다. <한겨레21> 2003년 3월13일자 450호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여성을 많이 기용한 노무현 대통령을 기사로 다뤘다. 그런데 제목이 남달랐다. <한겨레21>은 표지에 달랑‘노무현의 여자들’이라 썼다. 또 과거 진보적 만평의 대명사로 불리던 박재동 화백의 한겨레 만평엔 종종 여자가 등장했다. 80년대 정부의 앵무새 노릇을 하는 언론이나 법관을 부정적으로 그릴 때 단골 등장 인물은 여자였다. 법관복을 차려입은 여성은 곧‘권력의 시녀’였다.

정치권 내 진보적인 남성마저도

이 장관의 이런 발언에 대해 프리미어 편집장 최보은씨는 실언도 잘못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실언이지만, 그건 이 시대 평균 남성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이다. 자의식 없이 얘기한 건데, 전적으로 잘못한 거다. 평소에 아무리 진보적인 남성일지라도 그런 가치관을 가진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진보적인 사람 속에도 묵은 가치관이 배어있다. 그걸 반영한다고 본다” 최보은 편집장은 이어서“이창동 장관은 작부 데리고 놀던 시절 사람이고, 그걸 풍류라 알던 시절 사람이다. 아무리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라도 문화관광부 장관의 그런 발언은 사람들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권 내 진보적인 남성이라고 하는 이마저도 그런 의식을 갖는 건 분명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혹자는 이 장관을 일컬어“보수나 마초는 확실히 아니다. 다만 워낙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라고 말했다. 물론 그건 자기비하 발언일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비하를 위해 고통 받는 여성을 농락하는 건, ‘비하’를 넘어 ‘비열’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진보적인 남성에게서 나온 소리라 더 충격

문화와 ‘관광’ 정책 결정자의 부적절 발언

한편으로 이 장관이 영화감독으로 발언한 걸 갖고 그러는 건 과잉반응 아니냔 소리도 들린다. 실제 많은 영화인들이 ‘창부’에 집착했다. 심지어 그걸 영화로 만들어 국제 유수의 영화제 수상도 심심치 않았다. 그래서 “한국 감독은 매매춘 여성밖에 그릴 줄 아는 게 없냐?”는 뼈있는 농담도 들렸다. 노골적인 영화 제목도 있다. <노는 계집 창>이다. 하지만 한국 중년 남성의 평균치라고 백 번 양보하더라도, 현실 정치에선 진보적인 남성이자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남성의 발언을 단지 개인 실언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만약 여성 장관 누군가가 “창남은 필요하다”는 발언을 했더라도 비유이자 실언 정도로 치부됐을지 의문이다.

영화평론가 권은선씨는 그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사실 어찌 보면 놀랄 일도 아니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남자예술가들이 근대를 창부로 설명한다. 항상 동원된 수사다. 영화적 학문영역에서 영화는 제7예술, 종합예술이다. 기존 자양분 속에서 피어난 예술이다. 영화가 모순된 매체이고, 상업적이면서도 예술의 위치를 갖는다는 말을 설명하려는 것은 알겠으나, 거기에 ‘창부’란 수사는 문제다. 물론 남성예술인답고, 남성예술가들 포지션이 다 그렇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도 창부가 등장한다. 창부란 언제는 모욕을 주면서 언제는 예술적 영감도 줘야 하는 존재다. 남성예술가들에겐. 영화계 쪽에선 영화를 비하한다, 폄하한다 그러지만 그보다 지독한 남성예술가의 수사가 문제이지 않나?”

하지만 여성계 쪽에서 문제삼는 건 단지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계 일각이 백만 근은 담긴 듯한 한숨을 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런 말을 한 이가 일반 남성이 아니란 사실이다. 그가 누군가? ‘문화관광부’ 장관이다. 문화와 관광에 관한 최고 정책 결정자다. 더구나 매매춘 관광지란 오명을 날리는 한국의 ‘관광’정책 책임자다.

그의 임용은 참여정부의 대표적 개혁 인사였다. 취임시 파격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렇게 믿었던 젊은 장관 입에서 나온 소리라는 데 우려와 파문이 컸다. ‘한소리회’ 조진경 사무국장의 지적은 사뭇 날카롭다.

“장관님 표현에 따르면, 인간이 지닌 욕망의 자연스런 구현이 창부에게는 없다. 우리는 성매매 근절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다. 따라서‘창부’의 아픔을 매일 본다. 그래서 안다. 그 사람도 사람이다. 그도 자기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이다. 돈 때문에 남성에게 성적 즐거움을 주기 위해 고통과 모욕감을 느끼며 살아야 할 사람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대국민 홍보를 준비중인데, 장관님부터 해야하니 우리 길이 험난하다”며 걱정을 표명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창동 장관님이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성매매를 허용할까 겁난다.”

‘창부’는 사람이 아닌가?

여성부 주관 ‘성매매방지대책 자문단’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는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맥락상 비유 자체는 알겠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창부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창부를 둘러싼 사회적 구조가 있는데 그걸 똑 떨어뜨려놓고, 창부를 사회 시스템상 꼭 필요한 듯한 의미를 깔고 있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윤락행위 방지법이 있어서 성매매 판매인을 처벌하도록 법으로 규정한다. 법적으로 성매매 여성을 범죄인으로 규정한다”며 “진의가 어떻든 창부가 필요하다는 말은 아주 다른 맥락을 갖게 된다. 혼성모방이라거나 다른 비유를 들면 안 되나?”하고 덧붙였다.

위 발언에 대해 영화계 일각에선 영화를 폄하한다고만 펄쩍 뛰었다. 하지만 영화보다 더 폄하된 건 매매춘 여성이다. 남성들에게 성적인 즐거움을 주느라, 업주에게 묶여 고통받고 있는 인간이다. 영화 위치 폄하가 이들의 고통에 대한 희롱보다 더 큰 문제일까? 더구나 그런 발언을 서슴지 않는 분위기나, 그 말에 같이 웃어버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창부 운운하는 교수들의 태도는 어떻게 봐야할까?

이번 발언을 신문 기사로 보고 한 번, 서점에서 직접 책을 확인하고 한 번, 도합 두 번 황당했다는 신지영(29·회사원)씨는“이번 일로 다시 한 번 정치적 진보와 여성관의 진보가 별개란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정치에선 진보적인 남성들이 여성관은 실종한 상태가 지적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 일로도 “진정한 여성 정책을 펼 생각이라면, 달랑 여성부만 둘 게 아니라, 모든 부서에 여성 정책 담당 부서가 필요하다”란 여성계 관계자의 지적은 의미 심장하다. 더구나 현재 참여정부에 여성 실무자 기용은 미흡하다. 올바른 여성 정책을 위해서도, 참여정부에 여남 평등의식 참여부터 필요하다. 가능할까?

조은미 기자coo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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