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단체협의회 60년 여성운동사] ② 오늘이 있기까지 여협 이끈 사람들 (1)
[한국여성단체협의회 60년 여성운동사] ② 오늘이 있기까지 여협 이끈 사람들 (1)
  • 최금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 승인 2019.10.03 07:55
  • 수정 2019-10-0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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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국 존속 위해 나선 이희호·
가족법 개정 운동 앞장 이숙종·
여행원 제도 폐지 촉구 이철경 등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가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부침의 세월 동안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여성운동을 이끌어 온 여협은 여성의 권익신장 및 지위향상에 관한 법과 제도를 구현해 왔다. 10회에 걸쳐 지난 60년 여협의 의미있는 여성운동의 역사를 돌아보고, 향후 60년을 향해 내딛게 될 여성운동의 바람직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초반 30년 6명의 역대 회장
초반 30년 6명의 역대 회장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의 60년 역사는 사회 전 영역에 전통적으로 뿌리 깊게 만연했던 양성불평등 의식과 행태에 맞서 여성운동을 이끌어온 여성지도자들의 헌신과 노고가 응집된 산물이었다. 그들은 한국사회가 시대마다 당면했던 여성문제들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해결하기 위해 여성단체들을 결속시켜 한 목소리를 내도록 선두역할을 했다. 여협은 최근 김정숙 명예회장과 최금숙 회장을 포함해 모두 12명의 회장을 맞았다. 이들은 여협 회원단체의 회장 또는 부회장으로 활동하거나 외교관, 비행사, 국회의원, 교수 등 전문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이다.

지난 9월30일, 한국 공군 여성비행사 1호 김경오 여협 전 회장은 국립여성사전시관에 자신이 입었던 공군조종사 군복을 기증했다. 이전에도 미국으로부터 기증받은 비행기 1대를 1973년에 정부에 기증한 바 있다.

여협이 창립되기도 전에 세계여성단체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Women, ICW)의 지도자들로부터 한국의 가입을 권유 받아오던 터라 여협의 태동은 예정되어 있었다. ICW 참여 및 국제여성운동을 주도하면서 한국을 대표할 여성단체가 필요했을 뿐 아니라 국내 여성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할 협의체기구가 필요했기에 여성지도자들은 여협을 설립하게 되었다. 1959년 1월 15일 첫모임에 참석한 여성지도자들은 김활란, 박마리아, 박에스더, 박인순, 박덕순 등 5인의 위원을 선출하여 기성회를 결성한 후, 1959년 6월 12일 발기회를 통해 여협의 규정 초안과 창설 취지문을 채택했다. 그해 12월 26일, 가회동에서 여성 지도자 26명과 보건사회부 부녀국이 참석한 창립총회에서 여협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사실 이 모든 일은 진취적이며 선견지명을 지닌 창립 멤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협의 탄생 즈음에는 1960년 4·19, 1961년 5·16이 일어난 격동의 시기였다.

김활란 초대 회장
김활란 초대 회장

 

여협이 걸어온 초반 30년이라는 한 세대 동안 김활란, 이숙종, 이철경, 손인실, 홍숙자, 김경오 회장이 있었다. 김활란 초대회장은 임원들과 함께 1960년 민·참의원 선거 때에 축첩 정치인을 몰아내는 “축첩자와 부정부패자 축출” 운동을 펼쳐 우리나라 현대 첫 여성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1961년 여협 이사로 임명된 고 이희호 여사(당시 YWCA 사무총장 및 여협 이사) 및 정충량 이사, 이소란 이사와 함께 당시 보건사회부 부녀국이 아동국으로 바뀔 위기에 처해있는 부녀국의 존속을 위해 국가최고회의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보건사회부 장관을 면담하는 등 힘을 기울였다.

이숙종 회장
이숙종 회장

 

1970년 초대 회장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이숙종 회장은 창립 때부터 부회장을 지내며 활동을 해왔고, 여성정책추진위원회 발족,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 결성, 범여성총력안보궐기대회, UN 여성 10년 사업결성대회, 매점매석 방지와 물가안정을 위한 소비자보호운동 등 여성운동을 본격적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특히 67개 단체로 구성된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 회장으로서 부(父)뿐 아니라 모(母)에게도 자녀에 대한 친권을 인정하는 등 대폭적인 가족법 개정의 성과를 냈다. 여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이로써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정부내 여성특별위원회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철경 회장
이철경 회장
손인실 회장
손인실 회장

 

1979년에 취임한 한글 서예가 이철경 회장은 여행원 제도 폐지와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촉구운동을 펼쳤으며, 특히 1981년 UN 여성차별철폐협약 가입 촉구운동을 펼쳤다. 이를 이어 1982년에 취임한 YWCA회장 출신 손인실 회장은 비준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여 1983년 우리나라도 이에 가입하는 성과를 얻었다. 여협은 1983년 ‘퇴직 무효소송을 낸 전화교환원 김영희 사건(당시 전화교환원 정년은 43세)’을 계기로, 직장여성의 정년차별문제를 공론화하는 좌담회를 개최하고, 매스컴의 성차별 조장여부를 모니터링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홍숙자 회장
홍숙자 회장

 

1985년 취임한 외교관 출신이면서 세계여성단체협의회 회장에 선임된 홍숙자 회장은 근로여성을 위한 고발창구를 개설하고, 전화교환원 외에 교사, 영양사, 교수 등 고용에서의 성차별과 기혼여성의 퇴직문화에 대한 여성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매스컴 모니터링을 통해 성별차별문제의식을 이어가는 한편, 여성에 대한 성고문에 관해 7개 정부부처에 강력히 항의했다. 

김경오 회장 기증 공군복 1950-1953
김경오 회장 기증 공군복 1950-1953
김경오 회장
김경오 회장

 

1988년 취임한 김경오 회장은 1989년 가족법 개정에 대한 건의문 수백 통을 발송하였고, 근로여성 차별문제 사례집 발간, 수차례의 관련 세미나·좌담회 개최 등을 통해 여성차별문제를 꾸준히 제기했다. 이 시기에 대기·수질오염, 핵문제 등 환경보호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간통죄 폐지에 관한 토론회 개최, 성폭력특별법 제정촉구를 위한 범여성·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 등을 했다.

여협 초반 30여년을 이끌어온 여성지도자들은 한국사회에 여성에 대한 성별고정관념이라는 인습을 깨고 정년차별을 철폐하는 등 권리를 찾아가는 여성운동 자리매김에 기여했다. 이 시기는 모자보건법 제정, 가족법 개정, 성폭력특별법 제정,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UN 여성차별철폐협약 가입 등 여성정책의 제도화에 힘써온 때였다. 이러한 성과는 여성지도자들과 여성단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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