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의 황하코스모스가 파란 하늘 아래 활짝 피었다.

 

인중을 다쳤다 꽃이 졌다
내가 나를 이길 수 있을까
알 수 없이 손과 팔에 힘을 꽉 주고
그가 아닌,
나를,
치욕스런 나를 이기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고
왼쪽으로 휘어져도
애를 쓰며 서있었다

몸에는 하나의 관이 그날 이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은 서걱서걱,
또 어떤 날은 우우 울음을 운다

당신은 화가 났습니까?
아니오
가슴께에서 화기가 느껴진다
당신은 울고 있습니까?
아니요
뼈에서는 눈물이 난다

잃어버린 나를 되묻고
울음을 이겨먹을 수 있습니까?

비쩍 말라버린 풀잎같이
몸에서도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척박한 모래에서
보석처럼 울음이 반짝인다

이제 나는 나를 용서한다.

 

[밤의 시간이 낮의 시간과 같아지는 추분. 나의 과거와 미래의 나의 시간도 이렇게 같아질 수 있을까. 가끔 숨을 쉬기 위해 해수면을 오르는 해녀처럼 나에게 남은 숨이란 얼마까지일까. 몸이 천천히 아파왔다. 계절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싶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감과 통증은 수시로 찾아온다.

‘치유의 꽃’을 쓴지 1년이 지났다. 하고 싶었던 말들이 몸 밖으로 조금씩 비집고 나오면서 나는, 다시 말을 배우는 아이의 심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논리도 맞춤법도 중요하지 않았던, 울음인지 웅얼거림인지 모를 그 언어들을 뱉고 난 뒤 나는 꽤 속울음을 오래 울었고, 지금도 몸 안에서 웅웅 바람 소리가 들린다.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눈물로 벅차오르는 그 날들. 혼자 견딜 줄만 알았지, 나눌 줄 몰랐던 어리고 어리석은 내가 있었고, 그런 나를 지켜봐 주는 그녀들이 있었다. 고맙다. 계속 투덜거리고, 가끔 잠수타고 단톡방을 불시에 나가버려도 묵묵히 곁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엄마는 해녀입니다』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엄마처럼, 나도 내 숨만큼만 노력하고, 살고 싶다. 언젠가 그에게 찾아가 삿대질을 하며 욕한 바지를 실컷 해 보일 날을 기다리며. 그때까지 스스로 단단해지길 기대한다.]

<여성신문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나눔터>를 통해 공개된 [생존자의 목소리]를 매주 전제합니다. 이 코너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아픔과 치유 과정을 직접 쓴 에세이, 시 등 다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