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경제 이론 구축한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공동체 경제 실천하는
‘마포 모아’에 주목

공동체 경제 이론을 구축한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인 캐서린 깁슨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공동체 경제 이론을 구축한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캐서린 깁슨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교수.

 

“사과 반 상자에(5kg) 5천원! 한 상자에 7천원!” 시장통 아저씨가 소리를 쳤다. 허리가 아파 절뚝대며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동안도 작지만 빨갛고 탱글탱글한 사과가 어른 거렸다. 샀어야 했는데, 다 팔렸겠지? 저녁 뉴스에 풍년이 든 사과를 헐값에 팔며 울상이 된 농부들 이야기가 나왔다. 뭔가 마음을 콕 찔렀다. 이것이 무엇일까?

싸구려 사과도 자본주의 전략

지난 9월 29일 대안 경제 이론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케더린 깁슨(Katherine Gibson) 웨스턴 시드니대학 교수가 ‘마포 공동체 경제 네트워크 모아’(이하 마포 모아)를 방문했다. 제주 여성포럼에 초청 받아 한국에 온 그는 바쁜 일정을 쪼개 마포 모아를 방문한 것이다.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2013, 출판사알트), 『타자를 위한 경제는 있다』(2014. 동녘) 등을 펴낸 깁슨 교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 사람들의 경제적 동기는 아주 협소하다고 이야기 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 사업가는 적은 임금과 싼 원료비로 이윤을 높이려하고, 직원은 임금 인상만 기다리고, 집주인은 부동산가 상승을 바라며, 노름꾼처럼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투자가는 선망의 대상이다. 소비자는 적게 내고 많이 사고 싶어 시장을 어슬렁거린다. 그러니 그러니 시장에서 알뜰하게 값싼 사과를 사고 싶어했던 나는 돈 앞에 윤리는 없고 싸게 더 많이 사고 싶어 하는 자본주의 소비자였던 것이다.

비판할수록 괴물이 된 자본주의

사람들은 풍요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인색하고 탐욕스럽게 만든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이상하게도 자본주의는 비판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 세력이 커져갔다. 깁슨 교수는 자본주의의 판을 키우는 비판이 아니라 비자본주의적 경제 활동을 가시화하는 일들을 해오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는 빙산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물물교환, 이웃아이 돌보기, 품앗이, 텃밭 가꾸기, 기부, 절도, 노예부리기, 뇌물 등 좋든 나쁘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을 경제활동이라고 말한다. 깁슨 교수는 이미지를 만들라고 한다. 마치 브레인 스토밍처럼 이런 저런 생각들을 꺼내어 ‘경제지도 그리기’를 한다. 이 실천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관계를 살펴보아 대안 경제이론들을 만든다.

캐서린 깁슨 웨스턴시드니대학 교수가 지난 9월 29일 마포 공동체 경제 네트워크 모아 활동가들 만나 공동체 경제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공유했다. ©여성신문
캐서린 깁슨 웨스턴시드니대학 교수가 지난 9월 29일 마포 공동체 경제 네트워크 모아 활동가들 만나 공동체 경제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공유했다. ©여성신문

 

페미니즘에서 영감을 얻은 것

깁슨 그레이엄의 경제학은 페미니스트 이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돌봄노동을 가시화 시켜 국내총생산(GDP)의 맹점을 비판한 마릴린 워링(Marilyn Waring)처럼, 여성들이 일상에서 행했던 다양한 활동들을 가시화 해 경제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강간 이론에서 여성이 피해자로 축소되고 남성 페니스에 대한 공포가 커질수록 여성들은 무력해진다. 이때 강간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페미니스트들은 강간 폭력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페니스권력은 가부장제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렸다. 마치 실체 없는 유령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듯이 깁슨 그레이엄은 자본주의는 더 이상 무시무시하게 우리를 먹어치울 괴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렸다.

깁슨 교수는 자본주의의 온상인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 경제가 어떻게 꽃을 피우고 있는지, 지난 2년 반 동안의 변화를 궁금해 했다. 아동 공부방은 어떻게 되었는지, 왜 마포 모아가 이사를 했어야 했는지를 궁금해 했다. 그는 “최근에 한국 영화 ‘기생충’과 ‘버닝’을 봤다”며 “빈부 격차가 심각한 한국의 자본주의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 영화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이 든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해 아직 미숙한 어린 해녀들과 나눠 갖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아직도 공동체 경제가 살아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깁슨 교수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마포 모아, 공동체 경제의 든든한 동지

모든 면에서 ‘핫’한 마포에 공동체 경제 네트워크 모아가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모아는 시민 개인과 공동체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경제 주체가 되는 협동조합을 지향한다. 그들은 최근 ‘지역화폐 모아’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실험적인 활동을 진행했다. 유통되면 될수록 자본가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신용카드가 아니라 지역화폐로 지역에 이익을 돌리려는 실험적 활동이다. 지역화폐를 유통시키며 이들은 공동체 가게를 발굴하고 공동체 경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엮어냈다.

마포 모아는 과도한 경쟁으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호 의존의 방식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지금은 지역에서 필요한 것을 생산해 지역민을 도울 방법을 찾고 있다. 돈처럼 치사한 것이 어디 있나? 세련된 은행은 신용이라는 논리로 부자에게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고금리를 요구한다. 돈은 부자들 편이다. 일단 돈이 개입되면 우정이나 관계도 모두 깨져 버린다. 모아는 공동체 경제를 위해 관계가 회복되는 윤리적인 돈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깁슨 교수는 자신이 쓴 책을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하며 윤리적 경제, 공동체 경제를 실천하는 이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불가능한 꿈을 꾸며 걸어왔던 깁슨에게 마포 모아는 함께 꿈을 꾸는 든든한 동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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