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가족 다양성 여론조사
여성 77.6%·남성 63.4%
‘부성주의’→‘부모 협의’로
제도 개선에 찬성 의견
‘혼인 외 출생자’ 용어 폐기에
10명 중 7명 이상 찬성
80.9% “비혼독신도 가족 형태”
67.5% “생계·주거 공유하면 가족”

지난 6일 전북 전주시의 한 결혼식장에 걸린 현수막에 ‘자녀가 엄마 성(姓) 따는 앞서가는 혼인잔치’라고 적혀 있다.
지난해 10월 전북 전주시의 한 결혼식장에 걸린 현수막에 ‘자녀가 엄마 성(姓) 따는 앞서가는 혼인잔치’라고 적혀 있다. 이 부부는 혼인신고를 할 때 태어날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도록 하는데 합의했다. ©여성신문

국민 10명 중 7명은 자녀가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한 ‘부성주의’ 원칙을 없애는 제도 개선에 찬성했다. 남성도 63.4%가 부모가 협의해 자녀 성을 정하는 것에 동의해 부성주의를 규정한 민법 제781조 제1항 개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9월 29일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8월21~27일 전국 만 19~79세 이하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여가부는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1회 정기적으로 조사를 실시해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수용도와 변화 추이를 파악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 자녀의 성과 본을 아버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출생신고 때 부모가 협의해 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에 70.4%가 찬성했다.

현행 민법 제781조 제1항은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버지 성을 우선 따르는 부성주의 원칙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70.4%는 자녀의 출생신고 시에 부모가 협의해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 반대 의견은 24.4% 였다.

성별로는 여성이 찬성 비율이 77.6%로 남성(63.4%)보다 14.2%포인트(p) 가량 높았다. 반대 비율은 남성이 27.2%, 여성이 21.6% 였다.

연령이 낮을수록 찬성 비율이 높게 나타나 남성 중심의 가족제도에 대한 인식 변화가 뚜렸했다. 20대가 65.8%로 찬성 비율이 가장 높았고 뒤 이어 30대 51.7%, 40대 45.1%, 50대 32.9%였으며 60대 22.4%, 70대 23% 순이었다.

국제 사회는 한국정부에 불평등한 자녀 성 결정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해왔다.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은 가족성에 대해 부부가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1984년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을 비준했지만 14년째 가족성에 관한 규정인 제16조 제1항 g호를 ‘유보(reservation)’하며 이행하지 않았다.

부성주의 원칙에 근거한 자녀 성 결정제도를 달라진 국민 의식을 반영하고 국제사회에서 권고에 따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제도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8월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 보완계획을 통해 자녀의 성·본 결정 협의 시점을 현행 혼인신고 시에서 자녀출생 시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지난해 12월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통해 아버지 성을 우선하는 부성주의 원칙에서 부모 간 협의 원칙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부성주의 원칙이 저출산을 부추기는 불합리한 법제라는 판단에서다.

응답자의 70.4%가 “자녀의 출생신고 시에 부모가 협의하여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 ©여성가족부, 2019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응답자의 70.4%가 “자녀의 출생신고 시에 부모가 협의하여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 ©여성가족부, 2019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 “다양한 형태 가족 차별받지 않아야”

이번 조사에서 상당수 응답자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법 테두리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6.6%는 현행 민법에서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태어난 아동을 ‘혼인 중의 출생자’와 ‘혼인 외의 출생자’로 구분 짓는 것을 폐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여성(78.4%)이 남성(72.9%)보다 찬성 비율이 5.5%p 높았으며, 40대의 83.6%가 찬성한 반면, 70대에서는 56.3%만이 찬성했다.

법적인 혼인·혈연관계로 가족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32.7%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가족 개념이 전통적인 혼인·혈연 중심에서 보다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응답자의 67.5%가 혼인·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다. 연령별로는 20대(71.4%) 동의 비율이 가장 높고, 이어 30대, 40대 순으로 동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데에 응답자의 60.1%가 찬성했다. 응답자의 66%는 사실혼, 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의 혼인에 대한 차별 폐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조사한 결과, 국제 결혼(92.5%), 이혼·재혼(87.4%)은 10명 중 약 9명이, 비혼독신은 10명 중 약 8명(80.9%)이 수용 가능하다고 답했다. 무자녀 부부(67.1%)와 비혼 동거(65.5%)에 대해서도 10명 중 약 6명이 수용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다만,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44.5%만이 수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미성년이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25.4%만이 수용할 수 있다고 답해 미성년의 출산·양육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선이 여전히 많았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번 조사를 통해 다양한 가족에 대한 국민들의 수용도가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국민의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시대적 변화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모든 가족이 일상생활에서 차별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문화 조성을 위한 교육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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