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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부부이야기, 이게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예요.”

여성학자 오한숙희(45)씨가 <아줌마 밥 먹구 가>(여성신문) 이후로 1년 만에 부부 실용서를 내 놓았다. <부부? 살어? 말어?>(웅진닷컴). 지난 달 27일 서울 인사동 아트링크에서 만난 오한숙희씨는 최근 자신의 새 책 제목만 놓고 “부부? 함께 살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묻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살어? 말어?’는 실제 결혼한 아내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내이고 고민하는 말이에요. 결혼한 부부들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화두입니다. 하지만 정작 헤어질 건지 말 건지 결정하기 전에 과연 나는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왔는가 되돌아보자는 거죠.”

그래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이 시대 평범한 다른 부부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부부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중간 평가를 해보자는 것이다.

남녀, 차이 넘어 공통점 찾기

오한씨는 이를 위해 지난 10여년 동안 현장 안팎에서 만난 부부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약수터에서, 동네 병원에서, 모임에서, 방송에서, 상담소에서 만난 수많은 부부들의 생생한 모습을 통해 부부로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서로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 인간관계의 기본인 역지사지가 부부관계에서 그대로 통하는 것이다.

“부부는 자연발생적으로 맺어지는 혈연관계가 아니죠. 제도 때문에 함께 사는 거지.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맺는 인간관계예요.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게 뭐예요? 바로 상대방의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 이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돈독케 하는 지름길이죠” 해서 <부부? 살어? 말어?>를 읽은 독자들 중에는 책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금 공부했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혹자는 <부부? 살어? 말어?>를 오한숙희 버전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이하 화성, 금성)>라고 평하지만 그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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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금성>에서는 남녀의 차이를 부각하는데요. 서로의 차이점만 강조하면 뭐가 달라지겠어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데…. 저는 부부가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일치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간 역할의 차이를 강조하게 되면 공통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좌절만 하게 될 뿐이죠.” 결코 남녀는 다르지 않다는 것. 아내가 원하는 것은 곧 남편이 바라는 것이고 아내가 힘들면 곧 남편도 힘든 법이다.

“리영희 선생님께서 ‘인간은 인간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 부부는 60억 중의 두 사람. 접어주며 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상대방도 사람인데, 무엇보다 인간적인 연민과 이해가 필요하죠.”

그렇다면 부부관계, 무비판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넘어가면 문제들이 해결되나? 그건 아니다. “서로의 입장에 서서도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은 꺼내서 지적해야죠. 다만 부부들이 흔히 겪는 일에 대해서는 여성주의 상담이 보다 대중적으로 접근하자는 겁니다.”

여성주의 상담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것이 오한씨의 의견이다. 폭력이나 알코올, 도박과 같은 고질적인 병폐에 관해서는 여성주의로 단호하게 접근해야겠지만 평범한 부부의 일상적인 고민에 대해서는 보다 대중적인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

실천하는 대중 여성운동 필요

오한숙희씨는 가끔 ‘여성학자’라는 이름표를 떼어버리고 싶다고 한다. <부부? 살어? 말어?>를 두고 부부에 관해 다소 급진적인 페미니즘적 접근을 기대했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그렇다. 생활과 괴리된 채 학문으로만 존재하는 여성학은 ‘이론의 유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익히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사회제도나 구조가 바뀌는 것을 기다려야 합니까? 그 동안 우리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아주 쉬운 것부터 바꿀 수 있는 게 있잖아요. 평등 개념을 실천하고 부부의 질을 높이는 것, 우리는 그것부터 해야돼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부부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는 것부터가 그가 말하는 운동의 시작이다. 오한숙희씨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웃 속에서 섣불리 욕심내지 않고 공감하는 만큼 함께 실천하는 게 여성운동이라고 말한다. “이제 페미니즘을 구현하는 스펙트럼에도 다양성이 제고돼야 합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제도 속에서 대중의 공감을 얻으면서 싸워야죠. 당장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응급 처치법이 필요해요.”

오한씨는 조만간 부부교실, 부부학교를 열 생각이다. 스스로도 연애감정과 환상에 사로잡혀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누구든 살아보기 전엔 모르는 것이 부부관계.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 혹은 맺으려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주체적이고 올바른 부부관계의 모델을 만들고 싶어서다. 오한숙희씨에 의해 여성학은 ‘고고한’ 강단에서 내려와 길거리, 공연장, 방송, 그리고 사랑방을 통해 대중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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