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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마흔 넘어 얼굴에 책임지라구?

지나친 ‘얼굴 책임론’ 스트레스

나는 개인적으로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에 대단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젊은 나이에도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얼굴은 점점 더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노는데, 어떻게 내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보기에 마흔이 넘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는 것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실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링컨은 적어도 내게는 매우 실천하기 어려운 주문을 많이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한데 주위를 돌아보면, 나처럼 링컨의 말에 반감을 가지고 실천하기를 포기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얼굴에 대한 책임감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 듯한 느낌이다. 마흔이 넘지 않은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얼굴과 외모에 대해 더욱 더 책임감을 크게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 중의 하나이지만, 하여튼 요즘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외모에 대한 관심이 대단해 보인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인사라도 주고받기보다는 마치 자석에라도 끌리듯 거울 쪽으로만 얼굴을 돌려서 하마터면 얼굴을 부딪칠 뻔한 적도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외모를 중요시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늙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데 더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젊은 시절에 외모 가꾸기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 여자일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골드스타인(Goldstein)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노년기의 남자보다 여자에게 심리적 부적응이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병리가 더 많이 발생한다고 지적한 것도,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외모에 대한 집착과 관련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영화 중에는 늙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다가 ‘죽어야 사는 여자’가 되었다거나 늙어 가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혹은 대중에게 끝까지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여배우들을 다룬 것들이 꽤 있는 편이다.

심지어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왕년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빼어 닮은 딸로 하여금 자신의 행세를 하게 하다가 온갖 우여곡절 끝에 딸이 죽게 되자 그제야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남몰래 안도의 눈물을 흘리는 늙은 여배우를 그린 외국영화도 본 적이 있다.

한데, 흥미 있는 것은 우리가 늙어 가는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남의 주름진 얼굴을 보고 안심한다는 사실이다. TV를 보면서 ‘저 여자(혹은 남자)도 이제 많이 늙었구나!’ 하면서 한숨짓는 것은 늙어 가는 상대방에 대한 동정이기도 하지만 같이 늙어 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며, 또 어떤 면에서는 젊음을 유지하려고 그리도 애쓰는 저 사람도 결국은 저렇게 늙어버리고 마는구나 하는 동지의식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는 종종 남의 주름진 얼굴을 볼 때 편안해진다. 마치 매사에 너무나 뛰어난 데다가 완벽한 미모까지 갖춘 사람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가까이 하고 싶어지지 않는 것처럼, 늙어 보여야 할 나이임에도 늙지 않은 친구는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름진 얼굴을 애써 감추지 않음으로써 남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늙어 가는 자기 모습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여자 배우들을 좋아한다. 이들의 주름진 얼굴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편안함도 느낀다. 그 뿐인가. 이들의 얼굴에는 한 때 반짝하고 사라져버리는 미모를 극복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사람의 성실함과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삶의 나이테가 배어 있다.

아줌마 연기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줌마의 삶을 살아본 아줌마이며, 할머니 연기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이 없다면 아줌마나 할머니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나 연속극은 아주 없어지고 말 것이 아닌가. 이들이 없다면 우리는 거울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 같은 막막함을 느낄 것이다. 젊은 여자들은 또 어디서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 주름진 얼굴을 한 여자배우들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말이다.

우리의 피부가 스무 살부터 노화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화장품 광고가 아니더라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이제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우리는 인생의 3/4, 아니 어쩌면 4/5 정도를 주름살과 함께 살아야 하며, 세월과 함께 주름살은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해서, 나는 비록 내 얼굴에 책임을 지지는 못할 망정 적어도 주름진 모습을 받아들이기는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사실 그래야 남하고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아마 모두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얼굴이 붓고 유난히 이상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나는 하루 종일 내 얼굴을 의식하며, 남을 만났을 때에도 이상하게 쭈뼛거리며 겸연쩍은 표정을 짓게 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라. 남들은 알아채지 못했을 지도 모르는 나의 단점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나의 좋은 점을 보여주지 못한 셈이니, 얼마나 속상한 일인가.

그러니 우선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거울을 보면서 나의 주름진 얼굴이 남을 편안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어쩌면 나의 주름진 얼굴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내 얼굴에 책임을 지기 위한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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