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관객 앞둔 영화 ‘벌새’
팬덤 ‘벌새단’이 앞장서 홍보
유년기 시절 기억 공감 사며 호응
‘우리집’, ‘아워 바디’ 등
여성 감독들 독립영화 연이어 개봉

 

‘벌새’를 보고 난 관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마치 나의 과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평을 남겼다. ⓒ엣나인필름
‘벌새’를 보고 난 관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마치 나의 과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평을 남겼다. ⓒ엣나인필름

“김보라 감독님 시대의 이야기가 주된 서사였고, 1994년을 지난 40대 여성과 지금의 20대 여성들이 공감하는 것 같아요. 여성 관객들이 잊히고 감춰졌던 기억을 소환해내면서 공감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벌새’ 배급사 엣나인필름의 주희 기획마케팅 총괄이사의 말이다. ‘벌새’는 독립 영화로는 쉽지 않은 ‘1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8월 29일 145개 스크린으로 개봉해 9월 24일까지 9만 7126명의 관객을 만났다. 제작비 3억 원을 들인 영화로 100억 원가량을 들인 추석 대작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작지만 한 유년기의 여성의 개인사가 관객들의 공감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94년을 배경으로 중학생 은희(박지후)를 둘러싼 가정폭력이나 집안에 흔했던 가부장제, 친구와의 다툼 등을 여성의 시선으로 그려낸 점을 관객들은 호응했다.

여성 서사가 관객들에게 통한다.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80년대 태어난 여성 관객들이 느꼈던 유년의 기억들이 영화 안에 있다”라며 “그전까지 영화에서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주체가 남자였다면 여성 주인공을 통해 개인사를 이야기한다. 가정 내 폭력 같은 이야기는 남성 화자를 내세웠을 때는 없었던 이야기”라고 말했다. 8월 22일 147개 스크린으로 개봉한 ‘우리집’(윤가은 감독)은 24일까지 5만 713명의 관객을 모았다.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여자 아이들 삼총사의 이야기로 윤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 작품이다.

여성들의 연대와 응원도 계속됐다. 지난해 개봉한 ‘허스토리’의 ‘허스토리언’, ‘미쓰백’의 ‘쓰백러’의 팬덤이 있었다면 ‘벌새’에는 ‘벌새단’이 있다. 배급사에서 영화 개봉 전 94명의 관객을 모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벌새’를 홍보하는 여성들도 늘어났다. 자연스레 N차 관람(같은 영화를 여러번 관람하는 것)도 늘어났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안고독한 벌새단’을 운영하는 여자 대학생 A씨는 “‘벌새’에 대해서 미친 듯이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어 만들었다”며 “지브이(GV) 정보나 감독, 배우들의 무대인사를 정리해서 올린다. ‘벌새’ 뿐 아니라 여성영화에 대해 이야기도 한다”고 했다. ‘벌새’를 10번 봤다는 그는 “옛날에 겪었던 경험들이 영화에서 나오다니 그때 겪었던 감정들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현재 이 채팅방에는 350여명이 있다.

황 평론가는 “‘벌새’ 10만은 굉장한 숫자이다. 지방에서는 상영하는 곳이 많지 않고 서울이라고 하더라도 관객들이 인식하고 찾아보지 않으면 힘들다”라고 했다.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후반기 계속 개봉하면서 감독과 배우들도 서로 응원한다. 김보라 감독과 윤가은 감독은 9월 초 ‘크로스 GV’를 열었다. ‘우리집’을 보고나서 김보라 감독이 사회를 보고 윤가은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벌새’를 보고 윤가은 감독이 사회를 보고 김보라 감독에게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는 시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상영하고 있는 두 감독이 함께 GV를 여는 것은 드물다. 8월 개봉한 ‘밤의 문이 열린다’(유은정 감독)과 9월 26일 개봉한 ‘아워 바디’(한가람 감독) ‘메기’(이옥섭 감독)의 감독과 배우들이 함께 모여 격려하는 자리도 이어지고 있다. 주 이사는 “여성 감독들끼리 응원해주는 모습이 훈훈했다. 그러면서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 저 영화를 봐야 돼’라는 교집합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황 평론가는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주체가 출연해야 한다. 관객이 달라졌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도 달라져야 한다”며 “30대 여성 창작자들의 대한 연대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새로운 건 영화를 만드는 주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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