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아워 바디’ 감독 한가람·배우 최희서
정규직 입사 낙방하던 감독
8년간 무명 시절 겪은 배우
시험에 떨어져 무기력한
주인공 자영의 삶과 겹쳐

'아워 바디' 한가람(왼쪽) 감독과 배우 최희서가 한 자리에 모였다. 한 감독과 최희서는 "여자가 달리는 것을 소재로 한 영화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사 진진
‘아워 바디’ 한가람(왼쪽) 감독과 배우 최희서가 한 자리에 모였다. 한 감독과 최희서는 “여자가 달리는 것을 소재로 한 영화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사 진진

달리고 또 달린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리다보면 이내 마음속에 억눌렸던 숱한 감정이 마구 분출된다. 마치 몸속에서 있던 노폐물이 빠져 나가는 것처럼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도 함께 드러난다.

영화 ‘아워 바디’(9월 26일 개봉)는 달리기 하나만으로도 인간의 내면은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땀을 흘리고 나의 몸이 건강해진다고 느끼는 순간, 불안했던 삶에도 한 줄기의 빛이 비친다.

각본·연출을 맡은 한가람(34) 감독의 경험에서 ‘아워 바디’는 출발했다. 영상 만들기를 좋아한 한 감독은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후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방송국에서 일했다. 인턴과 파견직 조연출로 일했고 프리랜서 피디로도 일했지만 정규직 입사 시험에서는 번번이 떨어졌다. 철인 3종 경기에 나간 세 살 터울 언니의 추천으로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위로를 받았던 경험을 영화로 풀어냈다.

'아워 바디'의 한가람 감독. ⓒ영화사 진진
'아워 바디'의 한가람 감독. ⓒ영화사 진진

주연 배우 최희서(33)씨의 삶도 한 감독과 닮아 있다. 2009년 ‘킹콩을 들다’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을 합쳐 10여 편에 출연했지만 2017년 ‘박열’에서 주목받을 때까지 약 8년간의 무명 시절을 견뎌야 했다. ‘옥자’(2017) 이후 차기작이 없어서 불안했던 그는 프로필(배우 이력서)을 돌리던 중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 10장을 두고 왔는데 당시 KAFA에서 장편영화를 준비하던 한 감독 눈에 띄었다.

‘아워 바디’ 개봉에 앞서 마주한 한 감독과 최희서씨는 예기치 않은 상황을 견뎌내야 하는 현 시대 청춘들과 비슷했다.

“젊은 여자가 운동을 시작하는 소재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제 경험담이어서 자연스럽게 제 또래의 여자가 주인공이 됐어요. 자영이가 편안한 이미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희서 씨 프로필 사진에 그 이미지가 있었어요. 웃고 있는 얼굴이었어요.”(한가람)

‘아워 바디’의 자영(최희서)는 달리기를 통해 무기력에서 벗어난다. ⓒ영화사 진진
‘아워 바디’의 자영(최희서)는 달리기를 통해 무기력에서 벗어난다. ⓒ영화사 진진

31살인 자영(최희서)은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여러 차례 시험해서 떨어져 무기력하다. 공부는 물론 삶 자체에도 지쳐버렸다. 우연히 달리기를 하는 현주(안지혜)를 만나 달리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달리기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던 그는 현주를 따라하며 능숙해진다. 몸이 풀어지고 힘이 붙으면서 힘들기만 했던 자영의 삶에는 조금씩 활력이 붙기 시작한다.

영화는 불안한 미래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청춘들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정규직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이룬 것은 없는데 점점 먹어가는 나이 때문에 생기는 쓸쓸함을 오롯이 녹여냈다.

“대학교 졸업하고 4년 정도 방송국에서 일을 했었고 입사시험을 여러 번 봤는데 29살 때 그만뒀어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게 불안했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어 다 그만뒀었어요. 이후 단편 영화(‘장례난민’) 작업을 했어요.”(한가람)

“일반 회사 면접을 보고 떨어진 취준생과 비슷한 심정일 것 같아요. 저는 집에 있으면 불안한 스타일이에요. 주변에 있었던 무명 배우들과 사비를 털어서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었고 연극을 하기도 했어요. ‘난자 완스’라는 단편 영화를 찍어서 모교(연세대)에서 상영회를 했었는데 봉준호 감독님도 보러 오셨다고 하더라고요.”(최희서)

'아워 바디'의 배우 최희서. ⓒ영화사 진진
'아워 바디'의 배우 최희서. ⓒ영화사 진진

힘껏 달린 자영은 숨이 찬 듯 헉헉거린다. 그러더니 갑자기 뭔가 토해내듯 울기 시작한다. 서른이 넘었는데 제대로 된 직장 하나 잡지 못한 안타까움이 섞인 듯한 울음이다.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 나이 때에 약간 울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31살에 제 친구들도 되는 게 없었고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한 웹툰을 봤는데 달리기를 했다는 걸 봤어요. 그렇게 울면 속 시원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한가람)

“공감 가는 부분이었어요. 저는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었지만 알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자영이 완전히 무너지고 울음이 터져 나와야 했는데, 그걸 버티지 못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없으면 그 다음 단계의 자영이를 못 보여줄 것 같더라고요. 잘해야 된다는 부담이 많아서 여러 번 찍었어요.”(최희서)

“저는 30살에 백수였는데 신입사원을 해도 되나 생각을 했었어요. 언론사 입사시험 관련 카페에는 ‘29살 신입여자 괜찮나요’라는 글이 많이 있었어요. 고민하다가 마음을 접었는데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한가람)

“저는 29~30살 때 제일 힘들었어요, 그때까지 무명배우로 계속 살면서 앞으로 30대에는 더 힘들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31살에 ‘박열’을 찍고 예기치 못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신인상을 받아서 오히려 두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최희서)

한 감독과 최희서는 ‘아워 바디’를 여성영화로만 바라봐달라고 하진 않았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남녀 모두의 공감을 사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성영화라고 하면 흑백 논리에 빠질 우려가 있기도 해요. 영화계 내에서 여성 필름메이커(감독)는 소수자인 건 맞아요. 소수자에 대한 발견을 하는 것은 중요한데 소수자여서 중요하다고 하는 건 위험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그리려고 했던 건 모두의 공감을 사고 싶기도 하고요. (여성영화였다면) '허(Her) 바디‘가 아니었을까요?”(최희서)

“여성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여성영화라고만 하면 제가 이야기가 좁혀지는 것 같아요.”(한가람)

“그 다음 작품으로 반농담으로 수영 영화를 한다고 말하고 다녀요”(한가람) “어 정말요? 나 진짜 수영 잘해요. 접영도 잘하고요.”(최희서) “다른 사람들이 3편은 자전거 영화냐고 그러더라고요. 철인 3종 경기 말하면서요.(웃음)”(한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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