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의 목소리] 기억 그 이후
[생존자의 목소리] 기억 그 이후
  • 푸른나비
  • 승인 2019.09.27 14:52
  • 수정 2019-09-27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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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나눔터>를 통해 공개된 [생존자의 목소리]를 매주 전제합니다. 이 코너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아픔과 치유 과정을 직접 쓴 에세이, 시 등 다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나는 언제쯤 이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누가 답해줄까요? ©곽성경 기자
나는 언제쯤 이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누가 답해줄까요? ©곽성경 기자

 

저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입니다. 8살 이후 10여 년의 어린 시절 기억이 봉인된 것처럼,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경력 단절된 한부모로서 전직을 위해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했습니다. 자격증에 관련한 기초적인 상담 영역이 나의 무의식을 건드렸는지 밤에는 악몽을 꾸고, 낮에는 펼친 책 위로 남자 성기가 울퉁불퉁 튀어 오르는 환상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자격증을 딴 것이 너무 아까워, 딱 1년만 경력을 쌓고자 가족경영인 직장에서 정말 1년만 버티다, 현재는 쉬고 있습니다.

그 직장에서 만난 상사들은 부부로, 가해자였던 제 부모의 성향을 너무 닮았습니다. 겉으로만 좋은 사람인 척하는 남자 상사와 윽박 지르고 소리 지르는 여자 상사 밑에 있으니 마치 가해자였던 어릴 시절의 부모와 함께 사는 것 같았습니다. 나와 함께 했던 직장 동료는 한참 어린 나이인데도 경력 때문인지 본인 인성인지 내게 끝까지 반말을 하고, 존중이 없었습니다. 그런 직장 동료에 대한 느낌은 마치 나의 여동생을 보는 듯 했습니다.

몇 년 전, 여동생에게 아빠라는 가해자의 학대에 대해 밝히며, 가해자를 피하면 네가 다음 차례가 될까 싶어 널 위해 오래 견뎠노라 어렵게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은 그건 언니가 반항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하였고, 제가 태어났을 때 종교색이 강한 대가족 식구들은 이미 아빠라는 가해자가 학대할 것을 알면서도 방치한 것이며, 언니가 친딸이 아니라서 가해자의 먹잇감이 된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 전하고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직장 구성원과 가해자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온몸이 부서질 듯하고 청력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그 직장에서 한 달만 견디면 훨씬 더 좋은 환경으로 갈 수 있었지만, 이명과 더불어 물속에 빠져있는 듯한 느낌에 시달려서 큰 병이 될까 겁이 나 1년을 채우고 바로 그만두었습니다. 예전에 일이 힘들기로 유명했던 직장을 10여 년 넘게 다닌 것보다 더 힘든 것 같았습니다. 과거는 흐릿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에 대한 분노보다 두려운 것

쉬는 동안 스트레스가 줄어서 소리가 울렸던 귀는 잠잠해졌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경제적 부담은 있어도 마음만큼은 정말 편안합니다. 제 한쪽 귀의 청력이 약한 것은 오래 전 검사했을 때 알았는데, 의사는 어릴 때부터 청력이 안 좋았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 말을 그 당시 살아있던 여동생에게 전했더니, 자신은 어릴 때 귀 아픈 걸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서 안 좋아졌을 것이고 언니는 엄마에게 맞아서 그리된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이런 집안이 너무 창피하다 했습니다. 막내 남동생도 엄마가 큰누나를 너무 괴롭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들을 그땐 그랬나보다 하고 큰 감정 없이 넘겼습니다. 살림을 못 하는 엄마 대신 부모 없는 소녀 가장처럼 집안일을 도맡고 동생들을 돌보면서 가해자인 부모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다는 것을 옛날부터 인지는 했지만,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 제 스스로 믿어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마음 속에서 큰 요동은 치지 않습니다. 화가 나긴 하지만 그것보다, 제가 말하고 나서 다른 사람이 듣고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는 마음이 더 큽니다. 제 얘기를 이해할까요? 겪지 않으면 모를 일일 텐데…. 무시당하고 학대받은 내 인생을 누군가가 저울질할까 두려운 것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가해한 그들에 대한 분노보다 여전히 어린 시절의 버려진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큽니다.

요즘 일을 안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옛 기억이 자꾸 찾아옵니다. 아빠라는 가해자의 두툼한 손에 발목이 잡혀 바닥에 질질 끌려갈 때, 얼굴에 닿았던 그 차갑고 축축했던 장판의 촉감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집에서 길렀던 고양이들이 엄마라는 가해자 손에 하나둘 사라졌던 기억이 납니다.

원 가족이 길렀던 고양이는 모두 길고양이였습니다. 아빠 가해자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데 생선을 삶아주니 그 냄새를 못 이겨 한 마리 정도는 마당에 있다가 집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밥 달라 애교부리는 길고양이를 좋아하고 즐기는 아빠 가해자였습니다. 오직 고양이 밥만 챙기고 그로 인한 뒤처리는 집에 있는 사람 몫입니다. 가해자가 자신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걸 못 견디겠다고 짜증 내는 엄마. 가해자 말을 집안일에 대한 스트레스로 흘려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고양이들은 한 마리씩 있다가 사라지길 반복했습니다. 엄마 가해자가 지나가던 개장수에게 고양이를 보내거나 못 찾아오게 멀리 버스종점까지 가서 내다 버려버리라고 막내 남동생에게 시키거나, 우악스럽게 고양이를 손으로 잡아 쥐고 당장 갖다버리겠다 소리 질렀던 그 장면들이 겹칩니다.

어느 날인가 큰 남동생이 비오는 날 쓰레기통 옆에 버려진 어린 고양이를 구해서 데려왔습니다. 데려온 고양이는 온몸이 접착제 투성이였고 쓰레기통에 붙어서 움직이지 못한 채 울고 있었다 했습니다. 빗물에 젖어 부들부들 떨며 울어대는 고양이의 몸에 있던 오물과 접착제를 조심조심 닦아주고 모두 떼어주었습니다. 그 어린 고양이는 자기를 구해준 것이 너무 좋았던지 개냥이처럼 잘 커서 우리가 무척 예뻐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쥐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지금에서야 ‘고양이를 키우는 집안에서 왜 필요 없는 쥐약이 놓여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해자가 자신보다 그 고양이를 너무 좋아한다고 고양이가 꼴 보기 싫다고 했던 엄마 가해자 말의 의미에 대해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뭐지? 아빠 가해자에게 학대당하는 나를 엄마 가해자는 어떤 마음으로 본 거지?

친족 가해자 얼굴 왜 공개 안하나 

근래 중학생 딸을 강간한 의붓아버지인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본인이 더 주도해서 딸을 죽인 친엄마 사건이 저의 마음을 더 요동치게 합니다. 중학생 소녀는 친부에게도 폭력을 당했고 의붓아버지에겐 폭력의 끝인 성폭력을, 친모에게는 살해를 당한 것으로 그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그 정도 사건이면 사회에 경종을 울릴만한 사건이라 가해자와 그 엄마라는 사람의 얼굴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하는데 뉴스엔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친족 성폭력인 경우는 피해자의 신상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 공개를 안 한다 들었습니다. 이미 피해자가 죽었는데 무슨 상관일까? 아무래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법 같습니다. 세상에 따지고 바꿔야 하는데 나의 모자란 법 지식과 영향력 없는 사회적 위치로 마음에만 절실히 사무칩니다.

어느새 뉴스는 늘 그렇듯 냄비물처럼 들끓다 그새 사라집니다. 내 일보다 더 화나는 그 일에 세상의 관심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말하기에서도 말하고, 날 아는 생존자들에게도 말하고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도 뭔가 후련하지 않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기억이 나면 날수록 분노는 쌓이는데 법적으로 해결하기엔 너무 과거의 이야기이고, 시간 지난 현재도 똑같이 여전히 가해자 위주의 세상입니다. (과연 운 없고 불행한 개인의 삶은 범죄 결과조차도 모두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것인지….) 이럴 땐 분노만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공고히 하자는 생각에 여태 고민 중에 다짐만 계속 합니다. 제가 정말 생각만, 고민만 하지 않길 바랍니다. 아무래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엔 너무 두려워서 게으르게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를 외면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 당한 고통보다, 그 수치보다 더 크게 내 몸이 떨고 있습니다. 나는 언제쯤 이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누가 답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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