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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란 자기가 아닌 남이 인정해 주는 나입니다. 자기 자신을 냉정히, 객관화 시켜서,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는 거죠.”

건축가 김진애(50·서울 포럼 대표)가 사회에 대한 기대 반 불신 반으로 찾아 온 여대생들과 만났다. 5월 26일 아주대 캠퍼스에서 열린 ‘이 사회에서 여자 살아남기’특강에는 서울대 공대 첫 여학생에서 유학, 출산 후 회사 창업까지, 여성 혹은 직업인으로서 다져 온 김진애의 전략을 전수 받기 위해 모여든 여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지기에 여념이 없다.

“건축·건설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으신가요?”“잘난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갈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출산과 육아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여자라고 무시하는 남학생들에 대한 대처 방법은?”“유일한 여자 공대생으로서 겪었던 어려움은 없었는지?”

멀지 않은 미래에 닥칠 일들에 대해 열심히 익히고 준비해두려는 눈치다.

“큰 프로젝트를 많이 하니까 대부분 건설 현장인데, 여자가 들어가기 사실 힘들어요. 돈 얘기 많이 하고 부정부패도 많죠. 구조적인 문제인데, 모르면 화나지만 알기 때문에 그렇게 화는 안 나요. 10년 뒤쯤에 부정부패 없어지면 여성들에게 기회가 많아 질 거라고 봅니다” 뛰어난 여자 1인이 나오는 것보다 여성이 전반적으로 진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 점을 위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김진애 대표의 지론이다.

유학생활, 귀국 후의 경험도 궁금해 할 부분. “미국에도 유리천장은 있어요. 직장 5, 6년차로 생활하면서 권력관계를 느끼게 되더라구요. 한국도 마찬가집니다. 사회 생활, 커리어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권력관계들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2, 3년을 직장 얻었다고 안주해선 안 되는데, 5, 6년 차에 옮길 것인가 직종을 바꿀 것인가 고민이 오게되죠”

진입부터 어려운 여대생들의 취업. 창업도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김 대표는 제안한다. 20대부터 시작해 실패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수 있다는 설명. 학교에서 학교로 전전하기보다 한번쯤 학교를 벗어나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학교 내부는 온실과 같아요. 학교의 온실에서 벗어나려면 일을 해보고 공부도 해봐야 합니다. 해외 연수 프로그램, 자원활동, 기업 연수 등 많이 지원해서 학교에서 벗어나 보세요. 흥하려면 망해보고 투자를 해야 얻어들일 수 있습니다”

사회 생활이 녹록치 않으니 어떻게 내 뜻을 펼칠 것인가 전략을 짜라는 조언과 함께 여자들이 곧잘 빠지는 함정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여자들은 자기가 좋은 사람임을 입증하려 하지만 사회관계에서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일을 잘 하냐, 얼마나 싸게, 오래, 같이 할 수 있느냐를 봅니다. 일만 가지고 생각하는 버릇을 일단 들이세요. 사회의 모든 일은 내 일에 함의를 갖습니다. 일 중심으로 생각하세요”

작은 부분이라도 내공을 보여주기, 이해관계·뉴스·네트워킹에 대한 얘기 많이 하기, 내가 가면 어떤 게 올 수 있다 보여주기, 문화·정치·사랑 등 다양한 주제로 유쾌하게 얘기하기, 얼굴이 빨개지는 시행착오 많이 겪기, 나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열 받지 않기.

김진애 대표의 ‘내공 전수’에 고개 끄덕이랴 속속들이 받아 적으랴 학생들의 손길이 바쁘다.

임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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