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난민 등 주제로 15명 강연
보수 단체 항의 집회 연 뒤
필수에서 선택 과목으로 변경
“혐오세력에 굴복” 비판 일어

연세대학교 필수과목인 '인권과 연세정신' 수업계획
연세대학교 필수과목인 '인권과 연세정신' 수업계획

 

연세대학교가 내년도 신입생부터 필수과목으로 수강하도록 이번학기 시범 개설한 교양수업 ‘연세정신과 인권’을 보수단체의 항의에 선택과목으로 전환했다. 연세대가 외부 압력에 입장을 번복했다고 비판하는 학생들은 “학교가 혐오세력에 굴복해 필수과목 지정을 철회했다”며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연세대는 9월 19일 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교양과목 운영체계를 논의하는 학사제도 운영위원회를 거쳐 2020학년도부터 ‘연세정신과 인권’을 선택교양 과목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연세대는 지난 8월 6일 인권·사회정의·젠더·아동·장애·환경·난민 등 포괄적인 인권 문제를 다루는 교양강좌인 ‘연세정신과 인권’을 2020년부터 신입생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 직후부터 보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학교 측에 강의를 폐지하라는 항의가 이어졌고 같은 달 13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해당 강의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무분별한 난민 수용을 주장한다’며 보수단체들이 집회를 열었다. 연세대 측은 “학교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가치와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고 보호하는 것은 상충되지 않기 때문에 건학이념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고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며 강의 존속 의지를 비췄었다. 그러나 항의 집회는 시범 강의가 개설된 2학기가 개강한 이후에도 계속 돼 이달 3일과 17일에도 기자회견이 열리는 등 멈추지 않았다.

연세대는 지난 10일 돌연 “수강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관련 논의를 통해 교과 내용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힌 뒤 9일 만에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 이에 필수강의 지정을 철회한 학교를 규탄하는 학생들은 19일 입장문을 내고 “‘연세정신과 인권’ 강의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서 학교 당국은 대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내걸었던 인권을 스스로 짓밟은 셈”이라며 “인권 강의 필수과목 지정 취소를 철회하고 의견수렴 과정부터 다시 진행하라”고 요구하며 온라인 구글 문서를 통해 연서명을 받고 있다. 

현재 온라인 강의인 ‘연세정신과 인권’은 학부 재학생 2400여명이 듣고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지난 한 달 동안 교수와 동문들, 교내외 각계 의견을 수렴해 학사운영위원회에서 선택과목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연세춘추에서 학교 측은 “외부의 반대 목소리 때문에 학사제도를 변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하고 “학생들의 의견에 따라 강의 내용과 운영방식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인권과 관련된 강의를 필수 교양과목으로 개설하려 했던 의도 자체를 새롭게 평가해야 할 것”이라며 “강의 개설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는 것은 아마 기획하고 제안한 사람도 예상은 했을 것이다. 다만 예상 밖의 극렬한 저항에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외부 집단이 학교 내 학생들의 커리큘럼에 관해 반대 입장을 내고 이념적인 문제로 끌어나가는 것은 학습권 침해로 볼 수 있다”며 “혐오발언과 인권의 지향을 같은 무게선상으로 바라보는 듯한 일련의 사태를 봤을 때 아직 우리 사회가 인권을 보편적으로 다루고 배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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