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에 동양 성문화 박물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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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칼라합환상’. 지혜를 가진 남성과 자비를 가진 여성이 서로 보완해야 완전해진다는 티베트 밀교의 관념을 형상화 한 것이다. <사진·민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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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4일 개관한 동양성문화 박물관 2층 전시장에는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춘화와 춘의가 전시돼 있다. <사진·민원기 기자>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온 젊은 커플,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단위의 관람객에서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전시관은 온통 북새통을 이뤘다. 개관 첫 날 입장객 300여명, 이쯤이면 관람객 동원은 대성공.

지난 5월 24일 토요일 오후 3시 삼청동에는 작은 박물관이 하나 개관했다. 이름하여 ‘동양 성문화 박물관(Asia Eros Museum)’. 한국 최초로 개관하는 성문화 박물관으로 중국, 일본, 한국, 네팔, 티베트 등 성과 관련한 미술품과 생활품 모두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네덜란드, 일본, 스페인, 미국 등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잡은 성 박물관이 비교적 보수적이랄 수 있는 한국에 생긴 것은 다소 이례적인 일. 서양의 성 박물관이 현대의 포르노그라피에 중점을 둔 데 반해 아시아의 성 풍속물을 따로 모았다는 것도 특이하다. 그래서인지 관심을 갖고 취재하는 외국 방송팀도 눈에 띄었다.

서양의 포르노그라피와 다른 성 풍속을

좁은 전시관 1층, 여기저기 조명을 받은 거대한 남근의 형상들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언제부터 남근은 성문화의 중심이며 권력과 힘의 상징이 되었을까. 한시대의 제방제후였던 유승의 무덤에서 발굴된 남근 조형물. 청동으로 된 길이 22cm의 모형 옆에는 “따뜻한 물에 담근 후 즐기던 성적유희 도구”로 “시대를 초월해 훨씬 대담했던 고대인들의 성의식을 알 수 있다”는 설명글이 붙어 있다.

전시관의 중앙에는 여자를 들어 안고 합일하는 모습의 구릿빛 신상이 위풍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하칼라합환상’이라는 이 신상은 티베트 밀교의 관념을 형상화했다. 지혜를 나타내는 남성과 자비를 나타내는 여성은 성적 결합을 통해서 비로소 완벽한 결합을 이룬다는 교리를 나타낸 것. 하지만 전시장의 모든 ‘마하칼라합환상’은 하나같이 전지전능한 남성 신이 가여운 여성 중생을 껴안고 성교하는 모습뿐이다.

한쪽에는 손바닥만한 전족 신발이 유리관 속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전족은 흔히들 19C 중국에서 여성들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알고 있지만 학예원 류정화씨는 “성행위시 남성을 자극할 수 있는 일종의 페티시즘 도구로서 여성을 억압하던 가학적인 행위”라고 설명했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이번에는 한국의 무속신앙에서 보여지는 성의식을 다루는 전시장이다. 시골 마을 어귀에 있을 법한 남근석, 기우제를 지내는 모습, 시집가는 딸에게 성교육용으로 주었다는 성행위가 묘사된 희귀한 별전 등이 전시되었다. 기우제는 여성이 강에 방뇨를 하거나 속옷을 강물에 빠뜨려 하늘을 자극해 비를 구하는 풍속이었다.

2층은 주로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춘화(남녀의 성행위가 담긴 그림)와 춘의(성행위를 묘사한 인형)등이 전시됐다. 전국시대 무사들의 액땜용 부적으로 사용됐다는 일본의 춘화는 다소 해학적이다. 남자의 성기는 과장돼 있고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류씨는 “전시상황에서 무사들은 춘화를 꺼내보고 웃을 수 있어 불필요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춘화는 세계 2차 대전 접어들면서 여자의 노골적인 나체 사진으로 바뀐다. 전시관 한쪽에는 전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여성의 누드사진과 누드가 그려진 지포 라이터가 진열돼 있었다. 어쨌거나 죽음에 직면해 전쟁터에서 싸우는 남성들에게 여성과 성은 전의요, 삶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류씨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관람객들은 연신 “재미있다”는 소감을 터뜨렸으며 일부는 “박물관을 성교육 학습의 장으로 활용해도 좋겠다”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호기심만 자극할 뿐 “몇 가지 전시품만 봐서는 성문화를 역사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다.

남근 숭배의 흔적들

하지만 못내 마음이 불편했다. 역사 속의 성문화, 지금까지도 그것은 성기중심, 남성중심의 성문화이며 여성은 여전히 쾌락의 대상, 혹은 억압받는 존재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과장된 성에 만족해하는 춘화 속의 여성이나 전족을 신어야만 했던 중국의 여성, 종교적 이해로 인해 남성 신 앞에 몸을 내맡겨야하는 여성들, 아들을 바라며 남근상 앞에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빌었을 우리네 여성들. 이들의 간절한 눈빛 앞에서 단지 학습의욕만 앞세워 여유 있게 관람하기엔 왠지 모를 죄의식이 느껴졌다.

시대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은 그 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다. 그런 면에서 김영수 관장은 “누군가는 언젠가 해야할 일”이라며 개관배경을 설명했다. “대중매체나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달한 지금에 있어 성을 저속한 것으로 취급하고 더 이상 억누르거나 터부시해선 안 된다. 선조들의 성문화를 뒤돌아보면서 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향유해 왔는지, 그리고 21C 우리가 누려야 할 성문화는 어떤 것인지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처음 개관하는 성문화 박물관. 남성 중심의 왜곡된 성문화를 그대로 학습하는 장이 되지 않지 않을까 하는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따라서 박물관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성문화만을 보여주는 전시 중심에서 벗어나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심도 깊은 연구와 전문 학예원 확보가 시급하다. 18세 이하는 부모를 동반해야 입장 가능하며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개관한다. 문의 02-733-7719

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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