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주요 공직에 오르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남자들이 아직도 그렇게 많은가.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게 자유한국당 정갑윤 의원이 “아직 결혼 안 하신 것으로 아는데, 대한민국의 제일 큰 병폐는 출산을 안 하는 것”이고 “출산율이 결국 우리나라를 말아먹는다”라며 “정말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발전에도 기여해 달라”고 했다. 뉴스를 듣다가 내 귀를 의심했다. 봉건시대의 언설이 들리네? 21세기 아닌가?

공직 적합성과 아무 상관이 없는 주제가 후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튀어나왔다. 어떻게 깎아내리고 기를 죽일까 궁리했으리라. 여자가 아이부터 낳아야지 무슨 공직이냐는 비아냥이 명백한 그 말에 결혼, 출산을 했건 안 했건 수많은 여성의 분노와 비난이 쏟아졌다. 출산이라는 엄중한 주제를 여성 비하의 도구로 사용하다니. 구정물을 난데없이 뒤집어쓴 것 같았다. 이 사태가 성차별이요 인권침해 문제임을 직시하고 국회는 물의를 일으킨 의원을 징계해야 한다. 소속당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 때 ‘진박 9인회’였던 그 의원은 당시 대통령이 배우자가 없어 친인척 비리가 생기지 않을 거라며 비혼을 공직의 장점으로 말한 적도 있다. 창피한 줄 알아야 할 텐데.

출산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그 의원은 산전산후휴가, 부모의 육아휴가, 어린이집 확충,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는 조치 등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어떤 의정활동도 한 흔적이 없다. 그렇게 인구가 중요하면 밥을 굶는 어린이가 없도록,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도록 애를 썼어야 했다. 꽃봉오리 같은 아이 삼백 명이 하루 아침에 물속으로 사라졌을 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침몰의 원인과 배경을 낱낱이 밝혀냈어야 했다.

보수적 남자 국회의원들의 성차별 언행은 한두 번이 아니라 일일이 비판하기도 숨차다. 그런데 모든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경우를 당하고 어이가 없어 잠시 답을 고르는 후보자를 보며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당했던 황당한 일들이 떠올랐다.

박 전 대통령에게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이를 낳으라고 했을까. 권력위계에서 자기가 높다고 생각하면 무례한 말을 막 던져도 되나. 그리고 왜 아무 때나 여자를 자기보다 아래로 볼까.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남성이 여성에게 이 세상은 네 것이 아니라고 암시함으로써 여성을 침묵으로 몰아넣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여성은 이중의 전선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 하나는 당면한 문제를 놓고 싸우는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애초에 말할 권리, 생각할 권리, 가치를 인정받을 권리, 인간 대접받을 권리를 얻기 위해 싸우는 전선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 솔닛의 지적은 얼마나 정확한가.

남성이 여성을 무시하고 가르치려 드는 현상을 일컫는 단어가 영어에 새로 생겼다. ‘맨스플레인(mansplain: man+explain)’은 2010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단어로 꼽히고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도 실렸다. 여성들이 그동안 남성에게 가르침 당하고 무시당하고 말을 가로채인 경험을 나누는 웹사이트도 생겼다. 솔닛은 말한다. “내가 관심 있지만 미처 몰랐던 사실에 대해 그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이 설명해 주는 건 나도 아주 좋아한다. 나는 알고 상대는 모르는 것을 그가 내게 가르치려 들면 그때는 대화가 틀어진다.”
아직도 봉건시대에 사는 남자들이여, 괜히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당신을 우습게 보고 싶지 않아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