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과 정의』 출간

한국사회 정의의 현주소를 짚는 신간 『판결과 정의』를 출간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사회 정의의 현주소를 짚는 신간 『판결과 정의』를 출간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을 지내고 ‘김영란법’에 힘썼던 김영란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최근 신간 『판결과 정의』(창비)를 출간했다.

김 전 대법관은 책에서 대법원의 판결이 우리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했는지 살펴본다. 특히 가부장제, 자유방임주의, 과거사 청산, 정치의 사법화, 성인지 감수성 등 한국사회에서 꾸준히 논쟁이 된 주제를 다뤘다. 구체적으로는 ‘성희롱 교수의 해임결정취소소송’, ‘가습기살균제 사건’, ‘강원랜드 사건’, ‘키코(KIKO) 사건’, ‘삼성X파일 사건’ 등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등장한다.

특히 책의 첫 번째 장에 있는 ‘가부장제 변화의 현재’는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김 전 대법관은 17일 가진 출간 기념 기자회견에서 “가부장제는 남녀문제가 아니라 계층화에 의해 구축된 위계질서 문제”라고 했다. 그는 “사회통념이 변하면서 호주제와 같은 제도적 성차별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가부장제와 같은 성별 계층화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가부장제의 본질은 단순히 성별의 차이로부터 나오는 현상이 아니다. 계층화에 의해 구축된 위계질서 문제다. 이분법적 논리에 기반을 둔 채 오랜 시간 동안 남성 우위의 질서를 구성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가부장제에서 우리 몸에 체화된 의식이 남혐과 여혐, 계층 간 분리 문제 등을 다 자아내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밝혔다.

책 제목에 ‘정의’가 들어가지만 책에서는 직접적으로는 다루지 않는다. 김 전 대법관은 정의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의 역할은 갈등을 평화롭고 모든 사람 혹은 당사자들이 최대한 수용할 수 있게 해결해줘야 하고,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방법을 모르는 것이지 어떤 게 정의로운 건지는 다들 알지 않나 싶다”며 “사람들이 느끼는 공정한 사회를 잊지 말고 판결을 해나가야 하고, 그렇게 가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잘 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법관은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사법부 구성원들에게 보다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도 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어려워지는 사회는 발전 없는 사회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막거나, 걷어차선 안 된다. 하지만 판사 선발 과정에서도 점점 사다리가 좁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책을 썼다”는 것이다.

이어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고학력 사회에 계층이동이 비교적 쉬웠고, 그에 대한 갈망이 큰 사회였는데 그래서 좌절감도 많이 느끼는 것 같다”며 “사다리가 걷어차지는 걸 느낀다는 게 중요한 것으로, 그 느낌을 담아내 구체적으로 어떻게 좌절감 완화 및 계층 이동 열망을 실현하게 할지 우리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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