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경로를 이탈할 계획입니다
[세상읽기] 경로를 이탈할 계획입니다
  • 함세정
  • 승인 2019.09.20 08:15
  • 수정 2019-09-19 0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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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청소년과 일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자주 물어오는 질문이 있다. 자퇴를 고려하거나 대학 이외의 경로를 모색하는 사람에게 뭐라고 조언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하지만, ‘현실’은 가혹하고, 부와 명예를 얻으려면 대학을 가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냐는 고민이다. 지난 주 10대의 삶을 연구하여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한 어른이 비슷한 질문을 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학교 밖 청소년이 2017년 기준 5만명에 달한다. 고등학교의 경우 전체 재학생의 1.5%이다. 나 역시 일하며 만난 청소년들이 탈학교를 고민할 때 신중하게 반응한다.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삶은 항상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지독하게 편협하고 위계적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직장과 위치도 그동안 제도권 교육을 받아온 긴 역사가 기여했을 것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이번에 위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10대들이었다. 청소년들의 첫 번째 답은 “그 사람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거예요” 였다. ‘가혹한 현실’에 대한 정보는 청소년에게 언제나 풍부했다. “공부 안하면 저 사람처럼 된다”부터 “우리 학원 끊으면 넌 망한다”까지 현실을 동원한 협박은 언제나 효과적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2000년 이후에 태어났다. IMF와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는 이들 삶의 곳곳에 새겨져 있다. 대학 안나오면 차별당한다고? 차별에 대한 레퍼런스도 결코 모자라지 않다. 시험 성적으로 지속적으로 등급화 되면서 높은 등급 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공간, 간식, 관심을 늘 목격한 것이 이들이다.

우리는 종종 청소년이 감정적이고, 단편적이며, 무지할거라고 가정한다. 우리만큼 고민했을리 없다고 예단한다. 소수자에 대한 흔한 타자화의 방식이다. 10대들의 두 번째 답은 그래서 절묘했다. “요즘엔 대학 가든, 안 가든 다 살기 힘들어요.” 저성장 고실업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바탕이 된 답이었다.

오래 이 세계에 머문 것과 통찰이 풍부한 것은 다른 이야기다. 한국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한국 사회에 대한 의미있는 분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을 통한 지식은 내 몫의 단면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고, 내 삶을 넘어선 세계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은 남들도 쉽게 얻을 수 있다. 해당 문제를 방금 접한 사람이라면, 오랫동안 고민하며 정보를 모아온 사람과 비교했을 때 사고의 깊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내 경험에 따르면, 탈학교 전까지 청소년들은 맹렬하게 지식을 모은다. ‘별로 고민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던데’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 당신 앞에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살짝 말씀 드리고 싶다.

따라서 오직 기여 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인데, 청소년과 비청소년의 위치와 관계를 감안할 때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종종 내가 일하는 분야의 5년 이상 선배라고 가정해 본다. 이렇게 가정하면 상대에게 아주 쓸만한 조언 말고는 할 수가 없다. 어차피 다 아실텐데, 가 전제 되기 때문이다. 선배에게 쉽게 조언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뭔가 이유가 있을텐데’ 라는 생각도 한 몫한다. 우린 누군가에겐 납득할 때까지 사연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반면, 누군가에겐 믿음의 여유를 준다. 사회적 소수자들은 늘 전자에 해당했다.

학교를 벗어나는 사람들을 ‘학업 중단 청소년’이라 부르지만, 탈학교 이후 모든 진로탐색이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권 밖에서도 배움은 지속될 수 있으며, 탈학교와 함께 모든 제도권 배움의 기회가 단절되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 2-3년 늦었다고 해서 대학에 입학할 수 없는 것은 아니고, 나이만으로 소외되기에는 대학은 소외의 천국이다. 경제적 배경, 입학 전형 경로, 출신 지역, 정치적 성향, 성적 지향 등 한국 사회에는 수많은 사회규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학교를 벗어나는 것이 배움의 끝도 아니지만, 유토피아로의 입성도 아니라는 점이다. 저항하는 예민한 사람만 학교를 떠나는 것도 아니다. 더 빨리 수능을 보고 사회에서 ‘성공’하고자 검정고시에 등록하는 사람도 있다. 학교에 남아있는 이들이 생각 없는 둔한 사람들도 아니다. 스쿨미투와 같이 학교 안에서 만들어내는 저항과 파장은 더 넓은 사회에 강렬한 성찰을 요구했다. 탈학교가 더 나은 사람이 하는 더 나은 선택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학교를 벗어난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또 다른 압력으로 작용한다. 삶은 기본적으로, 지속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이 지옥에서 저 지옥으로 가는 방향 전환일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고통이 일부 사라지고 새로운 고통이 생길 것이라고. 그럼에도 우린 어떤 고통은 도저히 더 견딜 수 없고, 어떤 고통은 견딜만 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타인이 미리 판단하여 알려줄 수는 없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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