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아무튼 젊음’
젊음의 경계에 대해
주목하는 작품 21점 전시
11월9일까지 코리아나미술관

페미니스트 작가 산야 이베코비치의 영상 전시물 '인스트럭션#2'(2015)는 마사지 방향을 화살표를 얼굴에 넣은 뒤 지우는 퍼포먼스이다. 젊음에 대한 압박을 나타내는 여성을 그렸다. ⓒ코리아나미술관
페미니스트 작가 산야 이베코비치(70)의 영상 전시물 ‘인스트럭션#2’(2015)는 마사지 방향을 화살표를 얼굴에 넣은 뒤 지우는 퍼포먼스이다. 젊음에 대한 압박을 나타내는 여성을 그렸다. ⓒ코리아나미술관

TV 화면 속 한 여성이 펜으로 얼굴에 화살표를 그린다. 이마와 눈 아래, 코와 입 주변에 그린 화살표만 10개 넘는다. 다 그렸나 싶은 순간, 그는 손으로 화살표를 마구 문지른다. 얼굴에 남은 것은 검은 얼룩뿐이다. 크로아티아 페미니스트 사진·설치 미술작가 산야 이베코비치의 비디오 작품 ‘인스트럭션’이다.

이베코비치가 그린 화살표는 얼굴을 마사지할 때 손으로 만지는 방향을 가리킨다. 4분53초 분량의 영상을 통해 작가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얼굴을 열심히 문지르지만 결국 남은 것은 매끈한 피부가 아닌 얼룩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베코비치의 이 퍼포먼스는 서른 살이던 1976년에 했던 것의 재연이다. 40년 전의 영상도 전시장 한편에 있다. 세월이 흘러도 여성들은 젊음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기획전 ‘아무튼, 젊음’은 젊음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여러 사회의 잣대들로 젊음을 강요하는 사회의 단면을 꼬집는다. 2017년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어서며 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과연 20~30대만 젊은 청춘이라고 할 수 있을지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젊음을 주제로 국내외 13명의 사진, 설치, 영상, 관객 참여형 작품 21점을 전시한다.

젊음을 가장 강요받는 것은 여성이다. 여성들은 예뻐야 한다는 사회적인 잣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이 잣대를 정면으로 깨뜨린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공연 예술가 마사 윌슨은 자신의 주름을 사진으로 옮겼다. 자신이 20대·60대였을 때의 옆모습을 서로 바라보게 한 사진 작품 ‘미녀+야수같은’이 대표적이다.

20대 얼굴 사진 아래에는 ‘Beauty’(아름다움)라는 단어를 붙여 놓았다. 반면 60대 얼굴 사진 아래에는 ‘Beastly’(야수 같은)라는 단어를 두었다. 젊으면 아름답고 똑같은 얼굴이라도 늙으면 끔찍하게 바라본다는 여성을 향한 사회적 잣대를 그대로 고발한다.

‘아름다움은 눈에 있다’는 화장을 한 눈과 하지 않은 눈을 대칭적으로 담았다. 화장한 눈 아래에는 ‘Beauty is in the eyes’(아름다움은 눈에 있다)라는 문장을 썼다. 꾸민 눈 아래 아름다움을 새겨 해학적이다.

마사 윌슨의 '미녀+야수같은'(1974·2009)43.2x59.7cmⓒ코리아나미술관

윌슨 작가는 과거 자신이 젊었을 때는 나이 든 여성의 모습으로 분장해 사회적인 이슈를 다뤘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늙은 여성을 향한 대중의 시선이 무엇인지 작품으로 펼쳐내고 있다.

전지인 작가의 ‘Folder: 직박구리’#젊음은 ‘젊음’을 주제로 한 세계의 속담을 수집해 은거울 아크릴에 새겨 넣은 전시물이다. 속담에 등장하는 ‘여자’나 ‘여성’이라는 단어를 ‘너’로 바꿨다는 것이 특이하다. ‘서른 살에 남자는 여전히 꽃같이 매력적이지만 너는 늙어 보인다’, ‘아름다운 너의 입에서 나오는 충고는 호의적으로 경청 된다’ 등으로 된다.

단어 한 개를 바꿨을 뿐이지만 옛 속담이 얼마나 여성을 ‘젊고 아름다운 존재’로만 가둬왔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관객은 속담을 읽기 위해서는 아크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수밖에 없다. 속담을 읽으면서 불편해진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젊음은 불안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김가람 작가의 ‘언발란스’는 관객이 한쪽 발에만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작은 공간을 도는 관객 참여형 전시다. 특이한 점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인기곡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한다는 점이다. 한쪽 발에는 신발을 신었으므로 관객은 롤러스케이트를 제대로 만끽할 수 없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젊음은 즐거운 기억이기도 하지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관객은 몸으로 체험한다.

아르 세스 코헨 작가의 '어드밴스드 스타일'. 자신의 개성을 확연하게 드러낸 노인들의 사진을 담았다. ⓒ코리아나미술관
아르 세스 코헨 작가의 '어드밴스드 스타일'. 자신의 개성을 확연하게 드러낸 노인들의 사진을 담았다. ⓒ코리아나미술관

남성들도 젊음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곽남신 작가가 연필로 그린 남성들은 우스꽝스럽다. 팔, 가슴의 근육은 터질 것처럼 거대한데 힘을 운동기구를 들고 있는 그들의 표정은 괴로워 보인다. 보디빌더의 모습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으로 젊게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운동기구에 몸을 의지하는 남성들을 꼬집었다.

아르 세스 코헨의 ‘어드밴스드 스타일’은 ‘나이 듦’이라는 이미지를 철저하게 깨부순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며 매끈하게 머리를 올린, 마치 패션지에 나올법한 노인들의 사진을 보면 웬만한 젊은 사람보다 감각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가 저들을 향해서 늙었다고 할 것인가. 젊음과 늙음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11월 9월까지. 02-547-9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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