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가부장제 신조어

반반결혼‧데이트통장 공유해도
가부장 대접 바라는 남성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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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초반 여대생 A씨는 남자친구와 데이트 통장에서 비용을 쓸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통장을 만들어 매달 일정 금액을 똑같이 입금하는데도 계산할 때는 늘 남자친구가 한다는 것이다. A씨는 “분명 나도 돈을 냈는데 매번 내가 얻어먹는 것처럼 느껴진다. 언짢을 때도 있다”고 했다.

20대 후반 직장인 여성 B씨는 최근 반반결혼 문제로 2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는 “반반결혼을 제안한 것은 남자친구였다”며 “그래서 나도 결혼 이후 갈등이 생길 수 있는 가사노동‧출산‧육아 분야에 대한 생각을 말했는데 그건 결혼이 아니라 계약이라고 하더라. 결국 갈등이 커졌다”고 말했다.

‘반반결혼’, ‘데이트 통장’ 등 남성이 여성에게 금전적 책임은 동등하게 질 것을 요구하면서, 가장으로서 권한은 누리고 싶어 하는 태도에 대해 반발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최저가’+‘가부장제’라는 합성어로 ‘최저가부장제’라는 신조어가 생겨 활발한 논쟁을 불러내고 있다. 비용은 최저가로 부담하고 싶으면서 가부장제는 누리고 싶어 하는 남성들의 모순적 심리라는 것이다. 특히 최저가부장제는 데이트‧결혼‧양가 부모 부양 등 ‘비용’이 드는 문제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지난 15일 JTBC 추석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고민을 입력하세요 GO STOP’에서는 반반결혼을 두고 싸움을 벌인 예비부부의 사연이 방송됐다.
지난 15일 JTBC 추석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고민을 입력하세요 GO STOP’에서는 반반결혼을 두고 싸움을 벌인 예비부부의 사연이 방송됐다. 방송 캡처
지난 15일 JTBC 추석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고민을 입력하세요 GO STOP’에서는 반반결혼을 두고 싸움을 벌인 예비부부의 사연이 방송됐다.
지난 15일 JTBC 추석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고민을 입력하세요 GO STOP’에서는 반반결혼을 두고 싸움을 벌인 예비부부의 사연이 방송됐다. 방송 캡처

일명 ‘반반결혼’ 때문에 커플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방송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사연이기도 하다. 결혼 비용과 생활비를 남녀가 절반씩 부담하자면서 정작 명절에는 시가에 먼저 방문해야 한다거나, 예단을 며느리에게 기본값처럼 요구하는 인식 때문이다. 

반반결혼을 주로 남성들이 요구하는 원인은 성평등이 이루어졌다는 착시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 간 불평등이 여전하다는 것은 소득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6월 발표한 ‘결혼과 출산이 성별로 노동시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20대 중반까지는 남성과 임금격차 없지만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남성 대비 상대임금이 감소했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에 급감했다.

비혼여성의 삶을 콘텐츠로 다루는 유튜버 ‘혼삶비결’은 “기존의 가부장제는 여성을 가정에 종속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여성들을 ‘김치녀’라고 욕한다”고 했다. 이어 “일부 남성들은 ‘이제 여성 상위 시대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여전한 유리천장과 남녀 임금 격차 등 여성들은 아직도 생활 속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경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가족 및 성역할의식에서 탈전통적인 여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남성들이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난 2월 발표한 2030세대 젠더 및 사회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인식 편차가 20% 이상 났다”며 “물론 남성도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여성의 탈전통적 변화에 비해 남성이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실제로 소득이 적은 여성들은 물론, 가부장적 문화나 출산·육아 등 여성의 삶 대한 이해가 없이 표면적인 ‘반반’을 요구하는 최저가부장제를 피하기 위해 여성들이 비혼을 택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다면 최저가부장제 현상은 여성에게만 문제가 되는 걸까. 신경아 한국여성학회 회장은 남성들에게 유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리하다고 했다. 신 회장은 “현재의 성평등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려면 반드시 비용부담이 따른다”라며 “이제는 사회가 여성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면서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하게 됐다. 그러면서 한 쪽으로 과중됐던 남녀의 업무 분담이 필요한 것”고 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성평등한 관계가 오히려 남성들에게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됐다”며 “문제는 남성들이 특권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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