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피해자 ‘진술 신빙성’ 의심
‘위력’ 행사 보기 어렵다… 무죄 판결
2심 안희정 측 진술 번복,
피해자 ‘일관된 진술’ ‘위력’ 행사인정,
징역 3년6개월
대법원, 2심 결과 확정 판결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실형 선고를 받은 데는 ‘진술 일관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안 전 지사가 검찰에서 한 진술과 항소심 법정에서 한 진술이 번복됐으나 피해자 김지은씨는 일관된 진술을 유지하면서 신빙성이 인정됐다. 

대법원(김상환 대법관)은 9일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3년6개월의 징역형을 내린 2심 판결을 확정했다. 한때 ‘대권잠룡’으로 불리던 안 전 지사는 3년6개월의 징역형, 40시간의 성폭력 교육 수강명령, 취업제한 5년에 처해졌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수행비서로 일하던 김씨를 4회 위력으로 간음하고 1회 위력으로 추행했으며 5회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 김씨는 지난 2018년 3월 방송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며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와 피해자 김씨 각각의 주장에 관한 ‘진술 신빙성’과 ‘위력 행사 여부’에 대해 다르게 판단했다. 

1심 재판부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안 전 지사에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 김씨의 주장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았으며, 두 사람의 관계상 위력의 ‘존재’는 인정했으나 ‘행사’ 사실은 별개로 봤다. 

재판부는 “간음 사건 이후 피고인과 동행해 와인바에 간 점, 지인과의 대화에서 피고인을 적극 지지하는 취지의 대화를 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취지다. 

또 “안씨가 피해자를 포옹한 것, 외롭다고 안아달라고 말한 것 외 별다른 유·무형상 위력이 행사된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안씨의 언행이 김씨의 자유의사를 제압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학에 충분할 정도로 위력을 행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9일 서울 대법원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내 성폭력 유죄확정 선고 후 기자회견이 열렸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9일 서울 대법원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내 성폭력 유죄확정 선고 후 기자회견이 열렸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반면에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형사12부(홍동기 부장판사)는 김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위력 행사 여부 또한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비합리적이고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며 “김씨가 자신에게 다소 불리한 부분도 솔직하게 진술했고 자신이 대응한 방법도 과장해 진술하지 않았다”고 봤다. 반면에 안 전 지사의 진술은 “안 전 지사는 김씨와 성관계를 맺은 경위에 대한 진술을 계속 번복하고 있다”며 “안 전 지사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안 전 지사는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김씨와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진술하지 못 했으며 사건 정황을 번복하거나 사실관계를 말하지 못했다. 

이어 위력 행사에 여부에 관해서 또한  “안씨는 권력적 상하관계로 김씨가 적극 저항하지 못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또 1심에서 진술 신빙성 문제로 비화됐던 안 전 지사의 지시를 따라 식당을 알아보는 등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을 취한 것에 대해서도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해 성폭행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문제 삼는 과정에서 불이익을 입기도 하는 점에 비춰볼 때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을 옳다고 보고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 심리를 할 때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고 밝히고 ‘성인지 감수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인지 감수성은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2심 판결과 대법원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앞서 1심에서의 판단과 달리 대법원은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 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 판단이라 볼 수 없다”고 밝히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와 함께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 “폭행, 협박 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피고인의 지위나 권세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 세력에 해당”한다고 봤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취재진을 향해 성인지 감수성만을 유일한 법리인 것처럼 강조하지는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배 대표는 "법원은 김씨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었고, 피해자가 갖는 신빙성을 갖췄다고 판단했다"면서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한 점도 중요하지만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기에 위력 부분이 강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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